찰라처럼 스친 불운에 그의 메달은 금빛에서 구릿빛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박승희(22·화성시청)는 씩씩하고 당당했다.
박승희는 13일(LA시간)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박승희는 준결승 1조에서 43초611로 1위를 기록했다. 결승 진출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올려 맨 안쪽에서 출발했다. 탕. 박승희는 재빨리 안쪽 코너를 점령해 선두로 나섰다. 첫 바퀴를 잘 도는가 했더니 곧바로 사단이 났다. 뒤에 따라 붙었던 앨리스 크리스티(24·영국)가 코너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바로 앞에서 달리던 박승희, 그리고 크리스티 옆에 있던 아리안나 폰타나(24·이탈리아)도 함께 넘어졌다.
순식간에 1~3위가 넘어진 사이 맨 뒤에서 달리던 리젠러우(28·중국)가 선두로 치고 나갔다. 당황한 박승희는 재빨리 일어났다. 500m 레이스에서 넘어진 선수가 앞선 선수를 추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박승희는 힘껏 빙판을 지쳤다. 그렇게 대여섯 발을 내딛다 또 넘어졌다. 마음이 앞선 만큼 스케이트가 따라주지 못한 것이다.
심판진은 크리스티의 실격을 판정했다. 박승희가 4위에서 3위로 올라가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박승희는 예선부터 준준결승·준결승을 모두 조 1위로 통과했다. 내내 완벽한 스케이팅을 하다 불운에 걸려 넘어졌다. 힘겨운 레이스를 끝낸 박승희는 허망한 듯 천장을 바라봤다.
박승희는 "준비한 대로 뛰려고 노력했다. 내 실력이 이 정도인 것 같다.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쉽지만 남은 경기를 잘 하겠다. 한 경기에 두 번 넘어진 건 처음이다. 왜 그랬을까. 그게 실력이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