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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주부의 세상보기]청계천을 보고 싶다

Los Angeles

2003.07.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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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던 나는 늘 입에 동요를 달고 살았다. 그 시절의 동요는 유난히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시골의 정서를 그리는 노랫말이 많았는데 서울에서도 명동이라는 도시 한복판에서 자랐던 나에게 그런 노랫말은 사실 별천지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 때 나에게는 ‘시골’ 이란 아마도 ‘미국’이라는 곳만큼이나 멀고 막연한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개발논리에 사라진 추억

‘나의 살던 고향은’ 복숭아 꽃도 없었고 살구꽃도 없어서 어찌 생긴 꽃인지 구별도 못하는 ‘서울내기’ 일지언정 나도 가끔은 ‘내 고향’이 그리워지곤 하는데 어쩌다 서울에 가보면 마치 또 하나의 외국을 방문하고 있는 듯한 이방인같은 느낌만 받고 돌아오기가 일쑤이다.

눈부신 발전도 좋고 최첨단을 쫓는 변화도 좋지만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아 놓은 공간이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다는 아쉬움은 나로 하여금 정서적인 사생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청계천이 복원된다는 소식이 그래서 그리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끝나고 오갈 데 없는 거지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툭하면 ‘청계천 다리’ 아니면 ‘굴레방 다리’ 밑에서 주어 온 아이 라고 소박한 놀림을 당하던 옛날이 생각나서 말이다.

개천은 어린시절 놀이터

눈치가 빤할 나이가 되어 어른들의 놀림이 더 이상 효험이 없어졌을 무렵에도 어쩌다 그 곳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행여나 ‘생모’가 불쑥 나타나 나를 알아보고는 가는 길을 막고 ‘아이고, 아무개야!’ 하면서 대성통곡을 시작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던 꼬마가 어디 나 뿐이었을까.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개천’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개천’을 본 적도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 놀았던 기억도 있다고 했더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작은 이모가 사시던 동네는 엄연히 서울이었지만 분명히 작은 개천이 있었고 이모네 집에 놀러 갈 적 마다 사촌들과 우리 남매는 ‘개천에 가지 마라’ 하는 이모의 말씀을 마치 ‘개천에 가서 재밌게 놀다 와라’ 하는 분부라도 받은 것처럼 곧바로 그 곳으로 깡총깡총 뛰어 직행하곤 했다.

성공적 복원공사 됐으면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 곳에는 늘 우리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고 너 나 할 것없이 그 오염된 물에 흠뻑 젖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개천의 주위에는 동네사람들이 놓아 기르는 닭들이 포장되지 않은 길 한가운데를 어지럽게 마구 쏘다니고 있었고 유난히 겁이 많던 동생은 행여나 닭이 저를 쫄까 봐 내 옷깃을 꼬옥 잡고 뒷걸음질을 치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까맣게 잊혀져 가던 옛일들이 뽀얗게 다시금 떠올라 아련함을 불러일으키곤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찾아가야 청계천이 나오는지도 한참을 더듬어야 기억이 날만큼 아득한 그 곳의 복원 소식은 그렇게 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길 하나를 뚫고 다리 하나를 세우려 해도 대다수의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시의원회니 뭐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기에도 몇 년씩이나 뜸을 들여야 하는 이 곳의 정서에 젖어 살아온 지 삼십 년. 그러지 않아도 복잡한 서울의 교통체증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복원공사를 위해 길을 막는다는 정부의 무대뽀 정책에도 묵묵히 그에 따른 고충을 감수하며 인내하는 우리나라 시민들의 어진 마음을 보듯 성공적인 복원공사가 끝난 청계천을 얼른 달려가 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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