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침체기에 빠져있던 프랑스 오트쿠튀르(고급맞춤복) 업계는 30대 중반의 한 남성디자이너를 향해 “프랑스 오트쿠튀르의 계승자가 등장했다”고 환호했다.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답고 화려한 문양과 색채가 담긴 낭만적인 의상으로 첫 오트쿠튀르 쇼를 펼친 그는 이브생로랑의 뒤를 잇는 프랑스 패션의 진정한 후계자로 떠오른 것이다.
1951년 남프랑스 아를르 지방에서 태어난 크리스찬 라크르와는 몽펠리에 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소르본느와 에꼴 드 루브르에서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는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패션관계자인 장자크 피카에게 발탁돼 이탈리아 브랜드 ‘에르메스’에 들어갔고, 이어 장 파투사로 옮겨 패션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얻게 됐다.
86년은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해. 모든 디자이너의 꿈인 황금 골무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미국 패션협회가 가장 영향력있는 외국 디자이너에게 주는 상도 받았다.
87년 현재 LVMH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지원으로 파리의 고급패션가 생토노레에 맞춤복점을 연 그는 그해 7월의 첫 맞춤복쇼에서 풍요로운 80년대 패션의 특성을 극대화시킨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적인 의상으로 패션계에 충격을 가했다.
잊고 있던 프랑스 패션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그가 부활시킨 것이다.
그 성공에 힘입어 88년 그는 두번째 ‘황금 골무상’을 받았고, 기성복과 액세서리 라인도 선보였다.
그가 선보인 두번째 라인은 ‘바자 드 라크르와’(94년), 세번째 라인은 ‘진즈 드 크리스찬 라크르와’(96년).
바자는 일반 기성복과 디자이너 기성복 사이의 경쟁력있는 가격대를 내세운 젊은층을 위한 실용적인 브랜드이며, 진즈는 대중적이면서도 독특한 이국풍의 예술감각이 담긴 캐주얼 라인이다. 이즈음에 홈컬렉션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첫 향수 ‘세 라 비’는 90년에 선보였다. 작년 10월 2일.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2003년 춘하컬렉션은 파리컬렉션의 전야제 파티를 겸해 펼쳐졌다.
이날 프랑스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음으로써 그는 데뷔쇼 이후 15년만에 프랑스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임을 공식 인정받은 것.
이 컬렉션에서 그는 선명한 원색들이 패치워크기법으로 조화되고, 자수 구슬장식이 섬세한 레이어드 룩 혹은 집시룩을 시도했다. 황금빛 샌들과 벨트 보석장신구들도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