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줄리 앤드류스는 디즈니사의 명작 중 하나인 ‘메리 포핀스’라는 영화로 첫 오스카상을 탔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읽으면서 자라는 ‘닥터 수스’ 시리즈 만큼이나 ‘메리 포핀스’ 역시 미국아동문화의 대표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영국 런던에 사는 한 가정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영국 신사의 전통과 지위를 지키려는 차가운 아버지와 그런 가부장제도에 순종하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가정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머니. 애정결핍으로 외로운 두 남매는 그들을 돌봐주기 위해 들어오는 보모마다 골탕을 먹여 달아나 버리게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메리 포핀스’ 라는 특이한 보모가 나타나고 그녀로 인해 그 가정이 변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흥겹게 풀어 나간 뮤지컬 영화다.
‘메리 포핀스’ 는 전형적인 영국보모의 모습으로 한 손에는 검은 우산, 또 다른 한 손에는 양탄자를 잘라 만든 커다란 손가방을 들고 이 가정에 나타나는데 그녀가 이 신비한 가방 안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물건들을 꺼내며 두 남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한창 그 영화를 좋아해서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할 무렵 나 역시 메리 포핀스의 양탄자 가방만큼 커다란 가방을 늘 지니고 다녔다. 옷핀이나 일회용 반창고, 딸애의 머리카락을 묶어 줄 고무줄이나 머리빗 같은 것이야 당연한 필수품이었고 비닐봉투에 넣은 물수건이라던가 아이들의 읽을거리, 군것질거리, 사각통에 들어있는 주스, 여분 빨대며 종이 냅킨, 메모지, 가위, 손톱깎기, 휴대용 클리넥스, 사진기, 튼 입술에 바르는 연고며 항생제 연고, 타일레놀 같은 약 종류까지, 걸어다니는 잡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메리 포핀스’의 가방처럼 새가 들어있는 새장이나 모자걸이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평소엔 그리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것저것 챙기게 되었고 게다가 늘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덕에 무거운 가방을 일일이 메고 걸어다닐 염려가 없다 보니 가방 속의 내용물이 겁도 없이 차차 번식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제는 내 가방 속의 내용물을 유심히 보면 더 이상 아이들을 위한 소품은 하나도 없는데도 여전히 잡동사니로 그득하다. 다른 곳에 두었다가는 잊어버릴 만한 물건들을 무조건 가방에 집어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어느새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고 내 정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이에 접어들고 나니 어디엔가 잘 보관해놓고 기억을 못해 암담해 하느니 그저 일단 가방 속에 집어넣고 말아 버리는 잔꾀가 생긴 탓이다.
나의 체구를 훌쩍 초월해버린 아이들은 더 이상 내가 저희들의 물건을 챙겨 주지 않아도 스스로 갖고 다니고 또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알아서 처신하고 다닐 나이가 되어버렸는데도 뜬금없이 가위나 일회용 반창고 등이 필요해지면 내 가방에 눈길을 주며 저희들이 필요한 그 물건이 당연히 그 안에 있으리라고 믿는 눈치다.
세월이 흐르고 가방이 바뀌어도 녀석들에게 엄마의 가방은 여전히 목이 마르면 주스가 나오고 입이 궁금하면 군것질이 나오던 따듯한 마술의 가방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