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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푸는 심리]헤밍웨이 가의 자살

Los Angeles

2003.08.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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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 정신과전문의
1996년 7월 어느 날, 마고 헤밍웨이는 샌타모니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미 사망한지 여러 날이 되어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에 치아 감식으로 그녀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외부에서 누가 침입한 흔적이 없었지만 유서 같은 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간질 발작으로 인한 질식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그러나 두 달 후, LA 카운티 검시국은 그녀가 치사량의 두 배가 넘는 수면제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이 자살은 그녀가 슈퍼 모델이고 영화 배우였다는 사실보다는 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친손녀였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그녀가 사망하기 35년 전인 1961년, 61세 때 사냥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일생을 통해 알코올 중독과 이에 따른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우울증이 나타났으며 그 때마다 자살에 대한 집념이 따랐다. 주기적으로 우울증이 악화되다가 자살하던 해에는 두 번이나 메이요 클리닉에 입원하여 전격요법까지 받았다.

마고 헤밍웨이는 어려서부터 여러 정신과 질환으로 고생했다.

우선 그녀의 이름부터가 희화적이다. 그녀의 부모는 어느 날 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포도주 ‘사토 마고’(Chateau Margaux) 한 병을 나눠 마신 후 흥겨운 기분에서 관계를 가졌고 그 결과로 딸이 태어나자 그 이름을 자기들이 마신 포도주 이름에 따라 ‘마고’로 작명했던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난독증(Dyslexia)을 가져서 할아버지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또 어릴 때 대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는데 성장한 후 이 사실을 공표하자 부모는 몇 년간 그녀와 대화를 끊었다.

전 가족 내에서 알코올은 매일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 시절에는 술을 많이 마시고도 취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같은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다.”라고 말 한 적이 있다.

그녀는 6피트의 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용모를 가지고 1974년 파버제 모델로 뉴욕 패션계에 등장한 후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그녀도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심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으며 1987년 약물 중독 치료 병원인 베티 포드 센터에 38일 간이나 입원한 적도 있다.

헤밍웨이 가계에는 그들말고도 자살한 사람들이 꽤 있다. 어네스트의 아버지(마고의 증조 할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중년에 당뇨병이 심해지고 여기에 우울증까지 따르자 총으로 자살했다. 그러니까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자살은 아버지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게다가 어네스트 형제 중 두 명도 자살했으니 이 집안은 4대에 걸쳐 무려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이렇게 자살이란 유전적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한결같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것으로 2003년 8월 미국 정신과 학회지에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이 주목을 끈다. 북 유럽 여러 나라는 대체로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데다가 인구가 그리 많지 않고 또 사회 조직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한 통계가 자주 발표되며 그 신빙성도 높다.

1963년에서 1997년 간 스웨덴 전체에서 발생한 8천4백명 자살자 가족을 일반 집단(같은 기간 자살 이외로 사망한 자의 가족)과 비교해 보니 그들 중 자살 수가 2백87명으로 일반 집단의 1백20명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의 병력을 조사할 때 환자의 가족 안에 자살자가 있는지 여부를 항상 기록해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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