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한테서 e메일이 왔다. 'A Window into the Bamboo Ceiling'이라는 워크숍에 참석하겠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이 행사는 CKA(Council of Korean Americans)에서 주관하고 KALCA(Korean American League for Civic Action)에서 도와주는 행사였다.
UCLA 법대 제리 강 교수가 연사로 나선다고 한다. '글라스실링(Glass Ceiling)'이란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뱀부실링(Bamboo Ceiling)은 생소했다. 당장에 구글에서 검색해봤다.
뱀부실링이란 단어는 제인 현에 의해 처음으로 연방정부에 등록된 트레이드마크로 아시안들이 직장에서 성실 근면해 능력을 인정받지만 승진에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뜻이라고 한다.
글라스실링은 종종 들어보았는데 뜻은 여성이나 소수민족일 경우 대기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의해 더 이상 승진이 불가능함을 말한다. 미국 정부에서는 취업 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1964년도에 통과시켰지만 아직도 인종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미국 센서스에 의하면 미국 인구 전체의 29.9%가 대졸인 반면에 아시안은 52.4%가 대졸이다. 우리 이민세대는 정성을 다하여 2세 3세들을 잘 키워 의사.변호사 분야에서 혹은 대기업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왜 그들이라고 마음이 편하기만 했었겠는가. 보이지 않는 편견과 오해로 상처 입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우스운 일화로 딸아이가 펜스테이션에서 집에 오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시골 아주머니 같은 분이 "Do you speak English?" 하고 물었다 한다. 속은 하얗고 겉은 노란 바나나였기에 일어난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 다른 일화는 아시안이었기에 당한 서러움이었다. 미국의 각 대학은 쿼터제로 입학인원 수를 조절한다. 딸아이가 제1지망으로 지원한 대학에서 탈락했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유난히 그 해에는 특출한 아시안 학생들이 많아 쿼터 밖으로 밀려났다고 했다.
또 다른 이야기다. 난 1980년대 초반에 유대인 한 분과 각별한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 분은 당시 내가 보기에 세상에 부러움이 없는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미국의 글라스실링의 사회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정계와 재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민초기 미국생활에 적응하기에도 너무 힘들었던 나에게는 이 무슨 배부른 불평인가 하며 코웃음 쳤던 일이 현재 우리의 2세 3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의 후세들이 문제점을 깨닫고 함께 해결책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이민자들은 언어와 문화충격을 딛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에 바빴다. 고맙게도 그들은 잘 성장해주었고 이제 그들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가 도와주기에 역부족이다. 스스로 문제점을 제시하고 의논하고 계획해서 실행하고 평가해감으로써 그 높은 뱀부실링을 뚫고 나가야 한다. 지금 유대인들이 정재계에 우뚝 서 있듯이 아시안 특히 한국인들도 그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과도기로 몸살을 앓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부터 20년 후 뱀부실링이란 단어가 거쳐 가야만 되는 하나의 성장통이란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글라스실링을 뚫은 대표자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아닐까.
이제는 많은 나라 대통령 총리도 여성이 많이 나와 글라스실링의 벽이 사라지고 있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고 인류의 역사는 진리대로 순리대로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뱀부실링을 뚫고 나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 아시안들 에게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굴할 기회가 주어졌는지 혹은 스스로가 잠재능력을 발굴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장하다 우리 2세들! 그리고 힘내라 우리가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