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월드 컵 축구대회때 조국의 젊은이들이 ‘오- 필승 꼬레아’(Corea)를 외치고, 세계의 한민족이 함께 열광하던 감격이 있었다. 그 때 당겨진 ‘꼬레아-Corea’의 불씨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조국의 서양어 명칭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Korea’ 보다는 라틴어권에서 쓰고 있는 ‘Corea’가 처음부터 서양세계 전체에서 1800년대 말까지 쓰여왔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의 명칭은 어떻게 ‘Corea’로 쓰여지기 시작했을까
Corea의 어원을 알아 보기위해 ‘왕오천축국전’의 저자인 신라 승려 혜초가 대식국(아라비아)을 여행하고 서력 727년에 돌아온 후 쓴 ‘서역기행문’과 800년대의 아랍문헌으로 부터 근세에 이르는 여러 자료들을 살펴 보았다.
우리나라를 서양어로 표기한 첫번째 기록은 간접적으로 몽골의 압박을 받던 로마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특사로 보낸 프랑스인 수도사 기욤 뤼브뤼크가 몽골-중국에 머믈다 1255(고려 고종 41)년에 돌아와 쓴 여행기에 고려를 중국의 동편에 있는 섬 나라 ‘Caule’라고한 것이다. 다음은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다년간 몽골-중국을 둘러보고 1295(고려 충열왕 21)년에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여행기에 중국의 동편에 ‘Cauli’라는 나라가 있다고 한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 보다 훨씬 전에 아라비아인들은 우리와 직접 교류했다. 예컨대 847(신라 문성왕 9)년에 출간된 아랍 학자 이븐 후르다드비의 ‘제 도로와 왕국 총람’에서 중국 저쪽에 산이 많은 ‘Shila’ 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풍부하고 기후환경이 좋아 한번 간 무슬림들은 그곳에 정착한다고 썼다. 이와 비슷하게 Shila를 기술한 학자가 10여명이 된다.
우리가 유럽인들에게 직접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543년 포르투갈/네덜랜드인들이 일본에 거류지를 마련하고 조선근해를 드나들때 였다. 그들의 항해일지에 고려가 아닌 조선을 ‘Corai, Coray, Corei, Core, Coree’ 또는 ‘Corea’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후 하멜일행이 제주도에 난파해서 13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후에 쓴 표류기가 1668(현종 9)년에 출간되어 드디어 조선이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조선 중기였는데 우리나라를 Corea의 불어식 표기인 Coree로 썼다.
고려를 Caule 또는 Cauli로 쓴것은 중국인들이 한문으로 쓴 고려를 ‘꼬우리’, ‘까오리’ (Gaoli) 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라틴어계에서 가장 가까운 표기로 그렇게 썼다.
한편 조선왕조가 시작된지 150년이 지났다 해도 당시 일본인들이 과거 450여년이나 한문으로 쓴 고려를 습관적으로 ‘고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포르투갈/네덜랜드인들이 Corai, Coray, Corei로 썼다.
그러면 고려의 첫 글자를 C로 시작한 여러 표기가 어떻게 Corea로 정착되었을가 라틴어에서 고유명사에 접미사로 ‘a’ 또는 ‘ia’가 붙으면 그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하며 여성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남성이름 George에 여성성을 부여하려면 Georgia로 한다. 고려가 한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자 Corea로 정착 되었다고 본다.
이는 중국의 옛 나라 진에서 나온 지나 즉 Chin-a, 몽골은 Mongol-ia, 아르젠틴은 Argentin-a, 콜롬비아는 Colombi-a 로 쓰는 것과 같다.
중국인 발음에 따른 Caule, Cauli, Kaoli와 일본인 발음을 따라 쓴 Corai, Corey, Corei 등 이 두 계통의 고려 표기에 대한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Corea는 Corai, Corei, Core 등에서 변형되고 변화되면서 연유된것 같다. Korea는1700년대 중반 지도에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