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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전통식 된장, 사막 햇살 아래 여물어요

햇콩 사용해야 잘 뜨는 메주
숨쉬는 항아리가 장맛에 한몫

요즘 독자의 전화가 부쩍 잦다. 건강과 음식에 대한 기사를 꼼꼼히 스크랩해 두었다가 조목조목 문의하는 정성이 놀랍다. 칠순이 넘은 어르신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이메일로 긴 글을 남기는 일도 간혹 있다. 너무 오래 전에 이민 와서 맞춤법은 틀리지만 전통 먹거리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이메일이 타주에서 보내올 때도 여러 번이다. 건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그 안엔 우리 것을 그리워하는 향수도 듬뿍 묻어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과 몸이 우리 음식을 찾아가는 건 굳이 '수구초심'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소울 푸드'에 대한 공통된 그리움이다. 아울러 입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그 진위가 흉흉해진 탓이기도 하다. LA 인근에 유기농 농장들이 속속 늘어나는 것도 '진짜' 음식을 원하는 욕구의 강렬한 반응이다.

이번엔 전통 방식으로 유기농 된장을 담그는 행사가 애플밸리 아델라농장에서 있었다. 가끔 한국 TV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장독대의 행렬을 이 농장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막에 푸르름을 드리우는 시골의 정경이 작은 쉼표로 다가왔다.

작은 교실엔 아침 일찍 달려온 참가자들로 꽉 들어찼다. 여가 시간도 찾기 어려운 바쁜 일상에서 누가 장까지 담가 먹을까. 그것도 버터 냄새에 익숙한 이국땅에서. 그런데도 열심이었다. 된장 담는 과정을 열심히 메모하고 세심히 메주를 살펴보기도 하고, 남자 회원들도 열띤 관심을 보였다.

농장을 운영하는 아델라씨는 농장에서의 고된 노동과 보람을 구수하게 섞어가며 장 담그는 시연을 보였다.

유기농 메주 5장에 물 3갤런, 천일염 4파운드, 숯, 고추, 대추 각 세 개와 13리터 크기의 항아리를 준비했다.

11월~3월 사이에 나온 유기농콩을 사용해야 메주가 잘 뜬다. 잘 띄운 메주는 잘라도 되고 통째로 잘 씻어 건조한다. 물기가 잘 마르면 항아리에 담는다. 소금물의 농도를 측정할 때는 달걀을 띄운다. 달걀이 동전 모양 만큼 떠오르면 항아리에 붓는다.

준비한 고추, 숯, 대추 등을 함께 넣는다. 숯은 잡균을 제거하고 좋은 곰팡이가 서식하기 때문에 반드시 넣어준다. 메주가 떠있지 않게하기 위해서는 나뭇가지로 눌러 놓고, 천이나 부직포를 덮어 고무줄로 묶는다. 계속 덮어놓는 것이 아니라, 햇볕이 좋은 날은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는다. 자주 열어주어야 발효가 제대로 되고 잡균이 번식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45~60일이 되면 된장과 간장을 분리할 수 있다. 된장을 따로 분리한 뒤 석 달쯤 후에 먹으면 맛있는 된장을 맛볼 수 있다.

아델라농장 된장 맛을 더 맛깔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항아리'에 있다. 천연 유약을 바른 항아리를 사용해야 숨을 잘 쉬기 때문에 장이 발효도 잘된다. 장이 익어가는 과정 속에서 항아리 겉표면에 소금기가 배어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장의 짠기가 많이 해소된다고 한다. 소나무 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100개의 항아리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많은 시간 동안 장담기에 얽힌 애환을 들려주던 김아델라씨는 "처음엔 한국의 풍광을 느끼기 위해 관상용으로 들여오려 했던 항아리였는데, 한국에 사는 동생의 권유로 장까지 담으며 살게 됐어요. 지하수가 워낙 좋아 장담기에도 적합해서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성공적인 된장과 고추장이 나왔죠. 워낙 이 곳 날씨가 건조해서 한국처럼 입에 착 붙는 맛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맛은 내고 있는 것 같아요. 타주에서도 고향맛이 그리운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장을 사가곤 합니다.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가도 맛있다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여물어가는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닦을 때마다 새록새록 보람이 찾아와 올해도 또 장을 담그고 있네요."라고 웃으며 마음을 털어 놓았다. 메주가 조롱조롱 익어가고 큰 가마솥이 걸린 작은 터를 소개하며 "여기가 제 소중한 놀이터예요."하고 웃는 아델라씨가 진정한 한국 전통을 이어가는 지킴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느리게 시곗바늘을 돌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희소성이 있고 가치로 빛난다. 된장으로 심심하게 끓인 배춧국, 텃밭에서 뜯은 채소와 구수한 쌈장을 함께 나누며 맛보는 아날로그적 힐링이 진하게 다가오는 그런 하루였다.

아델라 농장의 된장은 풀러턴에 위치한 가주생협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의:(714)773-4984

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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