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과 함께 주부들의 출퇴근이 시작됐다. 등교 시간의 교통체증을 뚫고 행여 지각을 하지는 않을까 안절부절하고 방과 후에는 교통정리 나온 보안관에게 눈총받을까 비굴한 눈치를 봐가며 한눈으로는 열심히 태워야 할 내 아이를 찾느라고 사팔뜨기가 될 지경이다.
벌써 십년 넘게 이러한 눈물겨운 투쟁을 하는 어미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배고파’라는 말로 퉁명스런 첫인사를 내뱉는가 하면 학교가 싫어 죽겠다는 둥, 시험을 망쳤다는 둥, 아무개하고 다투었다는 둥 온갖 심란하고 짜증나는 불평부터 들어주어야 하는 날은 어서 아이들이 제 차를 타고 등하교 할 날을 학수고대하게 된다.
보조석서 지켜본 운전문화
딸이 제 손으로 운전을 하고 다닐 날이 머지 않은 요즈음은 나무꾼이 숨겨놓은 날개를 돌려받을 날을 받아 놓은 선녀처럼 가슴이 설레다가도 가슴 한켠엔 노파심이란 무거운 쇠고랑이 채워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어 달 전 다리를 수술할 일이 있어 한 달 남짓을 운전퍼밋만 갖고 있는 딸애에게 운전을 시키고 조수석에 타고 다녀야 했었는데 그러는 동안 새로운 사실에 눈이 떠졌다. 물론 딸애의 미숙한 운전실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한치의 오차에도 용서가 없는 이 곳의 인색한 깍쟁이 문화의 인심이 보통 각박한 게 아니라는 그 것이다.
조금씩 양보한다면
지난 4월 남편의 볼일로 유럽에 가면서 지도읽기에 나보다 한수 위인 남편이 길잡이 역할을 하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를 포함해 이 곳의 바둑판 교통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고지식한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자유스러운’ 운전스타일에 질겁을 하지만 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로 눈치껏 양보하고 눈치껏 끼어 들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로터리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몇 바퀴씩이나 원을 그리기도 하며 헤매도 아주 위험한 사태가 아니면 좀처럼 빵빵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한뼘 넓이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녀야 하는 그들의 생활에서 어떻게 이런 너그러움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야박스런 준법정신
뻥 뚫린 널찍한 대로에 쌩쌩 달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이 곳에서는 우물쭈물 갈팡질팡 하는 차들을 못 견뎌 하고 조금이라도 교통법규에 어긋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금새 눈썹을 세모꼴로 곤두세우는 판이니 우리는 얼핏 교통법규와 운전예의를 칼 같이 지키는 신사들 같지만 반면에 융통성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각박하고 차가운 운전사들이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눈을 부라리고 심지어는 총을 쏴 대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고 보니 캘리포니아에서는 ‘인명은 제천’ 이 아니라 ‘인명은 제차(車)’ 라고 하는 우스갯말에 수긍이 간다.
솔직히 나 역시 얼렁뚱땅 대충 봐 줘가며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풍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지 않아도 흑과 백이 뚜렷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인 난해한 인생살이에서 그나마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가름해주는 교통법규 정도는 인색할 정도로 잘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는 새로운 마음을 갖고 운전대를 잡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운전석에 앉으며 잔뜩 긴장하고 경직되는 딸아이의 옆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나마 좀더 너그럽고 여유있는 운전문화라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