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의 한인 여성들에게, 그리고 80년대 이후에 이민온 이들에게는 연극배우 박정자씨의 카리스마적인 목소리로 기억되는 화장품광고 ‘헬레나 루빈스타인(Helena Rubinstein)’.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폴란드 크라카우에서 태어나 20세에 외삼촌이 있는 호주로 옮겨온 헬레나 루빈스타인(사진) 여사에 의해 태어난 화장품 브랜드.
그는 1902년 호주 멜버른에 ‘발라즈 뷰티숍’을 열고, 폴란드의 화학자 리주스키가 개발한 발라즈 크림을 판매했다.
이 제품은 후일 그의 첫 남편이 된 신문기자 에드워드 티투스의 도움으로 우편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그 성공으로 1908년에는 런던, 1912년에는 파리에 발라즈 살롱이 문을 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온가족이 뉴욕으로 옮겨간 이듬해에는 뉴욕에도 살롱을 열었다. 그의 성공은 이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1928년 파리에 돌아온 그는 전 유럽을 무대로 살롱을 오픈하며 수많은 화장품을 출시했다.
세계 최초의 워터프루프 마스카라(1939년), 세계 최초의 딥클린징 크림(1950년 ‘딥 클린저’), 세계 최초의 퍼밍크림(1953년 ‘컨투어 리프트 필름’), 세계 최초의 보습제품(1956년 ‘스킨 듀’) 등이 그가 기록한 화장품 역사들.
동시에 그는 마리 로랑생, 살바도르 달리 등 당대의 예술가들을 매혹시키며 유럽사교계를 휩쓴 신비의 여성이었다.
1938년 그는 러시아왕자 아실 구리엘기와 결혼하기도 했다.
후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유행에 편승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 미학자”였다고 기록했다.
그가 93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20여년이 지난 1988년 로레알은 브랜드 ‘헬레나 루빈스타인’을 인수, 제2의 도약을 펼쳤다.
세계 최초로 순수 비타민C를 화장품용기 안에 넣은 ‘포스 C’시리즈(1995년)가 출시됐고, 성형수술없이 얼굴을 조각해준다는 페이스 리프팅 제품 ‘페이스 스컬프터’(1997년)에 이어 세계 최초로 순수 100% 레티놀크림 ‘파워A’(1999년)와 주름을 없애주는 대표적 콜라겐제품인 ‘콜라게니스트’(2001년)가 속속 등장했다.
첨단과학과 함께 화장품 역사의 첫장을 열어온 화장품브랜드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화두는 바로 ‘앞선 아름다움의 세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