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다른 '클래식 뮤지컬'의 진수를 만나다…조지 거슈인 '포기와 베스'
6월 1일까지 어맨슨 극장
지난 22일 시작해 오는 6월 1일까지 LA다운타운 뮤직센터 내 어맨슨 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포기와 베스'는 바로 그 '클래식'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여준다. 스토리와 음악 면에서 모두 그렇다.
1930년대 사우스 캐롤라이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에는 고단한 삶을 질긴 생명력으로 이겨나가는 흑인들의 삶을 향한 경외가 담겨 있다. 얼핏 이야기는 평범한 치정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약에 중독된 깡패 애인 크라운이 살인을 저지르자 그를 도피시키고 홀로 마을에 남은 주인공 베스는 모두에게 외면당한 채 방황할 때 그녀를 따뜻하게 맞아 준 동네 앉은뱅이 포기와 사랑에 빠진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베스는 다시 돌아온 옛 애인을 만나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포기는 그녀를 지키려다 크라운을 살해해 경찰에 끌려간다.
절망에 빠진 베스는 이를 이겨내지 못한 채 마약상의 꼬임에 빠져 뉴욕으로 떠나게 되고, 뒤늦게 돌아온 포기는 다시 베스를 찾아 길을 나선다는 이야기는 그저 평범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와 다름없다.
하지만 '포기와 베스'는 입체적인 주변인물들의 삶을 통해 극에 위엄을 더했다. 남편을 잃고 신앙에 매달리는 세레나, 태풍 주의보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찾아 바다로 뛰어드는 클라라, 베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머라이어 같은 여성들의 캐릭터가 특히 그렇다. 이들은 가혹한 삶의 굴곡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며, 고전다운 울림을 선사한다. 마약상 스포팅 라이프도 끊임없는 유혹과 싸워야 하는 생의 단면과 기회주의의 표상을 보여주며 극에 다채로움을 입힌다.
거슈인의 음악은 '위대하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 정도다. '랩소디 인 블루' 같은 유명 클래식 곡이나 김연아의 밴쿠버 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곡이었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한인들에게도 익숙한 거슈인의 스타일이 작품 전반에 걸쳐 유감없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서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재즈적 리듬이 어우러진 선율로 혼을 빼놓는다.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는 첫 곡으로 등장하는 'Summertime'이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화성이 등장하는 합창 넘버나 그 어떤 고전 오페라의 아리아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듀엣곡 'Bess, You is My Woman Now' 'I Loves You, Porgy'등은 그저 황홀하고 감탄스럽다.
물론 배우들의 빼어난 역량도 한 몫 한다. 포기 역의 나타니엘 스탬플리는 무대 위에 서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빼앗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존재감을 지녔다. 두터우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는 발성과 발음 모두 우아하기 그지 없어 오히려 포기라는 남루한 인물에 안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베스 역의 알리시아 홀 모런은 신들린 연기력까지 지녔다. 조금만 잘못하면 갈팡질팡하는 베스 역을 밉상으로 보이게 할 공산도 큰 데,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몰입시키는 연기력으로 공감대를 만들어 내 오히려 제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발군이다. 2막 후반 무너져가는 베스의 모습에 관객들이 보이는 반응과 집중도는 매서울 정도다. 그 연기력은 노래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소리의 음량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노래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은 알리시아 홀 모런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30년대 빅밴드 재즈풍의 리듬감과 화음을 풍성하고도 매끄럽게 소화해내며 동물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앙상블들에게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사실 '포기와 베스'는 2000년대 들어 두 번이나 새로운 프로덕션이 만들어 진 바 있다. 이번 LA 공연은 그 가운데서도 최근작인 2011년 프로덕션이다. 원작은 모든 극 진행이 노래로 이루어지는 레시타티브 형식인데 반해 새 프로덕션은 일반적인 대사량을 대폭 늘려 더욱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복잡한 인물의 관계나 심리 표현도 조금은 간소화해서 굵직한 드라마에 힘을 실어주고 이야기의 집중도도 높였다. 음악도 거슈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충분히 살리되 현대 뮤지컬의 스타일에 맞게 재편곡해 친근감을 더했다. 그 덕에 이 작품은 2012년 토니상에서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번 작품의 프로듀서들이 작품을 리바이벌한 이유는 단 하나, "현대 대중에게 이 작품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포기와 베스'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세대를 막론하고, 뮤지컬과 클래식 팬들 모두에게 안성맞춤인 수준 높은 공연이란 뜻이기도 하다.
뮤지컬 '포기와 베스'의 티켓 가격은 35~120달러. 웹사이트(www.ctgla.com)나 전화(213-628-2772)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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