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미움과 분노를 가슴에 담고 사는 것보다 용서하는 편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은 또 그게 아니다. 어떻게 나를 심하게 비방하고 상처와 모욕감을 준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때 상처준 사람을 억지로 용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용서하려는 마음이 올라오지도 않겠지만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치솟는 분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 때 상처 준 사람을 향한 분노와 미움은 손상된 자아가 그 사람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일으키는 지혜로운 감정이다. 그러니 분노를 빨리 내려놓으라고 자꾸만 종용하는 것은 잘못하면 그 사람을 다시 상처로 내몰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처의 기억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떠올리며 자기 스스로를 희생자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용서에 대한 오해부터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용서는 과거의 기억을 없었던 일로 한다거나, 그 사람의 잘못을 지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과거 상처에 얽매여 힘든 내 감정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를 위한 것이다.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가슴으로 이끌어 주는 중요한 통로는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일어나는 분노와 미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한 마음의 눈으로 그 감정을 허락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내 안의 분노와 미움을 따뜻하게 지켜보다 보면 양파가 껍질 벗듯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의 속 모양이 드러난다. 나의 경우 분노 바로 아래에 슬픔과 비통함이 자리하고 있었고, 또 그 아래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더 깊은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아닌 나를 향한 자비의 눈길로 먼저 내 감정을 지켜보다 보면 신기하게도 굳었던 마음이 점점 녹으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난 후 그 자비의 눈길을 이번에는 내게 상처 준 사람에게 향해보는 것이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아픔이 있었기에 나에게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 보는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전에 는 볼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상처를 준 사람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상처가 많았던 사람이라는 것도 보이기 시작하고, 나를 무시하고 으스대던 그 역시 남들로부터 외모나 학력, 가난 때문에 무시받고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것도 보인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나와 똑같이 외로워서, 아니면 나이 드는 것이 서럽고 불안해서 저러는구나 하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지고 편안해진다. 그 상태에서 불안하고 외로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내 아픔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면서, 내 안의 비통함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자비함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 안에는 불안과 외로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마음의 눈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부디 그 자비한 눈빛과 마주하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