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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벨' (Belle)…흑인 인권 문제 여성적으로 접근…

Los Angeles

2014.05.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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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Belle)
감독: 아마 아산티
출연: 구구 음바사-로, 톰 윌킨슨 등
장르: 역사, 드라마
등급: PG


'벨(Belle)'은 여러가지 면에서 '노예 12년'과 통하는 영화다. 노예 제도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 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주제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는 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이라는 점, 그리고 훌륭한 예술 영화들을 엄선해 배급하는 폭스 서치라이트사의 작품이란 점 등이 그렇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색깔은 정 반대다.

'노예 12년'이 굵고 묵직하고 아프고 힘들었던 작품이었다면, '벨'은 여성적이고 온화하며 부드럽고 우아하게 포장이 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18세기 영국이다. 노예제도가 판을 쳤고 흑인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때다. 주인공 소녀 벨(구구 음바사-로)은 해군 제독이었던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친척집에 입양돼 다이도 린지라는 이름을 갖고 자라난다.

혈통을 인정받은 데다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까지 가졌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 지위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다이도는, 비슷한 처지의 사생아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해 돈 한푼 물려받지 못한 사촌 엘리자베스와 함께 자라나며 각별한 사이가 된다.

양아버지이자 지역 유지인 로드 맨스필드(톰 윌킨슨)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물론이다. 나이가 찬 두 사람은 각각 돈과 지위를 노리는 그저 그런 귀족 청년들과 혼담이 오가지만, 정작 다이도의 마음은 흑인 노예들의 인권을 위해 힘쓰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 존에게 향한다.

로드 맨스필드는 체제 유지와 기득권자들의 안정을 위해 노예들의 인권문제에서 고개를 돌리려 하지만, 다이도와 존의 노력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을 남기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벨'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 전 연령대 관람가를 뜻하는 PG등급만 봐도 알 수 있다. 욕 한마디 나오지 않고, 그럴듯한 러브신도 없다. 그래서 빨려들듯 영화에 몰입되는 맛은 덜하다. 대신 기품이 있다.

격조있는 영국 귀족 영어와 웅장하고도 섬세한 공간적 배경, 그리고 의상이 이 작품만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소모적 할리우드 영화에 지친 이들에겐 휴식이 되어줄만한 작품이란 뜻이기도 하다.

흑인 인권과 관련된 메세지를 여성의 시각에서,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 가족적인 설정에서 풀어가 전달하는 전개 방식도 돋보인다. 직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다이도와 엘리자베스, 맨스필드 가족의 다이내믹이 가슴찡하게 다가온다.

특히 다이도와 엘리자베스의 초상화가 화면 가득 담기는 부분은 아름다운 뭉클함마저 전해주는 따스한 장면이다. 영화 후반 법정 장면에서 로드 맨스필드의 판결로 흑인 인권 역사의 새 장이 열리는 부분은 얼핏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역사 드라마의 웅장함 대신 여주인공의 간절함이 이루어지는 식의 말랑한 풀이로 신선함을 전해준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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