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와 펜타곤…우리는 '공생관계'
영웅적 미군 묘사 땐 무한 지원
현역 네이비실, 전술 가르치고
항공모함·전투기 싸게 빌려줘
긍정적 미군 이미지 전세계 전파
영화는 싼 값에 리얼리티 높여
2005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특수작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네이비실(미 해군특수부대) 대원의 실화를 그린 '론 서바이버'(2013)는 전투신이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생생하다. 현역 네이비실 대원들이 배우들에게 무기 다루는 법과 전술을 가르쳐준 덕분이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미국인 선장의 구출 과정을 그린 '캡틴 필립스'(2013)에는 실제 미군 군함 세 척이 등장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암살과정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2012)의 경우 펜타곤과 CIA가 작전 관련 기밀 정보를 제작진에 제공했다. '액트 오브 베일러'(2011)에는 실제 네이비실 대원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펜타곤이 할리우드 영화의 든든한 우군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할리우드는 저렴한 가격에 미군의 최신 장비와 기지, 병력을 촬영에 활용하며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고 있다. 제작비 절감도 빼놓을 수 없다.
펜타곤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한다. 세계적으로 파급력이 큰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효과가 있다. 영화의 주 관객인 젊은 세대에게 정의롭고 용감한 미군의 이미지를 전파함으로써 모병 효과도 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인 드림웍스를 방문, "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외교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할리우드와 펜타곤은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긴밀한 유대를 형성한다. '포트 할리우드'(미군의 할리우드 기지) '오퍼레이션 할리우드'(미군의 할리우드 작전)란 말이 나올 정도다.
어벤저스가 퇴짜 맞은 까닭
영화 내용 설득력 없다는 이유
비밀 군사조직 '쉴드'도 거부감
펜타곤과 할리우드 사이 공생의 역사는 오래됐다. 미군 조종사들이 공중전 장면을 연출해 준 1927년작 무성영화 '날개'(Wings)로 협력의 첫 단추를 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의 사기와 애국주의를 북돋우는 일종의 '전쟁 프로파간다' 필름이다. 이후 지금까지 펜타곤이 제작 지원을 해준 영화는 1000편이 넘는다. 펜타곤이 1942년 영화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할리우드 연락사무소는 지금도 영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양측의 이해가 극대화된 영화로 1986년작 '탑건'을 꼽을 수 있다. 톰 크루즈가 해군 전투기 조종사 역을 맡은 이 영화에 해군은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제공했다. 큰 흥행을 거둔 이 영화 덕분에 미군 파일럿 지원자 수가 다섯 배로 늘었다. 해군과 공군이 '탑건'이 상영되는 극장에 모병 부스를 만들 정도였다. 이후 펜타곤은 젊은 층이 좋아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진주만'(2001) '블랙호크다운'(2001) '썸 오브 올 피어스'(2002) 등의 대작에 항공모함·폭격기·전투기·헬기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준 것은 물론이고, 실제 군 병력도 투입했다. '진주만'의 경우 진주만 기지 촬영을 허락하고, 본토에 있던 항공모함을 진주만에 보내 영화 프리미어 장소로 쓰게 하는 특혜도 제공했다.
펜타곤이 무조건 촬영을 돕는 것은 아니다. 미군을 부정적으로 그려선 안 된다. 할리우드가 펜타곤의 지원을 얻으려면 먼저 영화 대본을 보여줘야 한다. 미군이 긍정적으로 묘사될 경우에 한해 펜타곤이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디어 헌터'(1978), '지옥의 묵시록'(1979) 등 반전 메시지를 담거나, '허트로커'(2008)처럼 독단적 행동으로 팀워크를 저해하는 미군이 등장하는 영화는 지원하지 않는다.
펜타곤은 외계인이나 허구의 악당이 등장하는 SF 영화까지 지원한다. 물론 가이드라인을 지킬 때 그렇다. '진주만'을 통해 펜타곤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한 마이클 베이 감독은 '트랜스포머'(2007)를 만들면서 블록버스터급 도움을 받았다. 최신 군사장비와 현역 군인들을 제공받은 것은 물론이고, 펜타곤 내부에서도 촬영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외계 로봇에 맞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군을 멋지게 묘사했다.
'아이언맨'(2008)에서 전투기와 공중전 장면이 실감났던 이유는 공군이 최신예 전투기 F-22A 랩터 두 대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언맨의 동료이자 또 다른 히어로인 제임스 로디 중령은 원작만화에선 해병대 소속이었으나, 공군이 지원했기에 영화에선 공군으로 등장한다.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시리즈는 펜타곤의 지원을 받으며 속편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촬영으로 화제를 모은 '어벤저스' 시리즈는 어떨까. 펜타곤은 영화 내용에 설득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했다. 지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비밀 군사조직 '쉴드'의 존재도 펜타곤에 거부감을 줬다는 분석이다.
'포레스트 검프'(1994)도 60년대 미군에 지적장애인이 배속돼 있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지. 아이. 제인'(1997)은 네이비실에 여자가 입대하는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바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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