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스는 다음 시즌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를 맡는다. 긱스는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대신 프리미어리그 최종 4경기 감독대행을 맡았고, 20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긱스는 1990년부터 24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13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2회 등 총 34회 우승을 이끈 맨유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클럽에서 숱한 영광을 쌓았지만 자국의 축구 실력이 떨어져 월드컵 무대는 밟지 못한 대표적 선수가 긱스다. 그는 부모가 이혼한 뒤 잉글랜드 대신 어머니의 조국 웨일스를 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명 럭비선수였던 긱스의 아버지 대니 윌슨 역시 시에라리온의 피가 흐르는 웨일스인이다. '왜 잉글랜드 대신 웨일스를 택했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 온 긱스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고, 부모와 관계없는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긱스는 잉글랜드와 달 리 약체인 웨일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웨일스는 긱스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8년에 단 한 번 월드컵에 출전했다. 긱스는 네 차례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2007년 웨일스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리버풀의 전설' 이언 러시(53), 유럽 축구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 '1억 유로 사나이' 가레스 베일(25·레알 마드리드)도 웨일스 국적이다.
'월드컵이 외면한 스타'의 원조는 고(故)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다. 베스트는 맨유 7번을 달고 68년 유러피언컵과 발롱도르를 동시 석권했다. 그러나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북아일랜드는 24년 뒤 스페인 대회 본선에 올랐는데, 불운하게도 베스트는 그 사이에 선수 생활을 했다.
'아프리카 흑표범' 조지 웨아(48·라이베리아)는 더 기구하다. 그는 AC밀란(이탈리아) 소속으로 95년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예선에 사비까지 털어 감독 겸 선수로 나섰지만 네 번째 도전에서 또 떨어졌다. 2005년 11월 대통령 후보에 나섰는데 압승을 거둘 것이란 예상과 달리 낙선했다.
90년대 아약스 전성기를 이끈 야리 리트마넨(43)도 핀란드 역대 최다 A매치 기록 보유자(137경기 32골)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5차례 유러피언컵을 제패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78)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1926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스테파노는 3개국 국가대표를 거치고도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50년 브라질 월드컵은 조국 아르헨티나의 보이콧으로 불참했고, 54년에는 국적을 옮긴 콜롬비아가 FIFA 징계를 받아 출전이 무산됐다. 56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지만 58년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예선 탈락했다. 62년 월드컵에서 스테파노는 스페인의 본선행을 이끌고도 부상으로 본선 출전이 좌절됐다.
반면 '득점 기계' 안드리 셉첸코(38·우크라이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의 무대를 밟았고, 맨유 시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드와이트 요크(트리니다드토바고)도 같은 대회에 35세 나이로 처음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