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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21 그램]상처뿐인 인생의 멜로드라마

Los Angeles

2003.11.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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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펜.왓츠.델토로 매혹적 연기
숀 펜(왼쪽)과 나오미 왓츠, 여기에 베니치오 델토로가 합세한 연기는 '21 그램'을 독특한 멜로드라마로 만든다.

숀 펜(왼쪽)과 나오미 왓츠, 여기에 베니치오 델토로가 합세한 연기는 '21 그램'을 독특한 멜로드라마로 만든다.

한 여자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바로 옆에 한 남자가 벗은 몸으로 웅크리고 담배를 핀다. 누가 누군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첫 장면은 곧바로 피범벅된 남자와 비명을 지르는 여자와 또 다른 남자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급박한 모습으로 바뀐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교수 폴(숀 펜), 마약중독자였지만 결혼 뒤 딸 둘과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전과자였지만 종교를 통해 거듭난 잭(베니치오 델토로). ‘아모레스 페로스’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은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21 그램’(21 Grams)은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3명의 이야기를 펼친다.

올해 칸느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 중의 하나인 ‘21 그램’에는 영혼의 상처와 인생의 비극이 뒤엉킨다. 오직 종교에 의지해 삶의 끈을 놓치지 않았건만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3명의 목숨을 빼앗고 괴로워하는 잭.

죽음의 문턱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살아난 뒤 기증자의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사랑을 느끼는 폴.

가족을 잃고 다시 마약에 손을 대지만 남편의 심장을 가진 남자와 사랑에 빠져 복수를 꿈꾸는 크리스티나.

인생은 더럽고 상처 투성이다. 가족을 잃은 크리스티나에게 아버지는 얘기한다. “네 엄마가 죽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크리스티나는 얘기한다. “엄마가 죽고 아버지가 다시 사람들과 얘기하고 우리와 놀 줄을 몰랐어요.”

이냐리투 감독은 상처 범벅의 인생을 핸드 헬드 카메라와 시간을 뒤섞는 방식으로 거칠게 끌고 간다. 이런 방식은 영화 감상을 혼란스럽게 하기 보다는 쾌감을 높여준다. 주연 3명의 묵직한 연기(폴이 교수보다는 블루 칼라 같은 게 흠이지만)와 왓츠의 노출까지 영화는 인디의 거친 질감과 대중적 흥행성이 잘 섞여있다.

그러나 영혼과 구원의 문제에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21그램. 5센트 다섯개, 벌새 한 마리, 초코바 하나, 어쩌면 영혼의 무게”라는 대사는 영혼의 문제를 언급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 누구나 21그램이 준다면 그건 영혼의 무게일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영혼의 문제는 21그램 정도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잭은 더러운 인생과 영혼을 구원받으려 종교에 매달리지만 구원의 문제는 델토로의 연기 이상을 넘지 않는다.

영혼과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하기엔 ‘21 그램’은 너무 멜로드라마적이다. 매력적이고 독특한 방식의 멜로드라마이긴 하지만.

21일 개봉. 등급 R.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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