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역을 맡은 마이크 마이어스. '오스틴 파워스'에서 본 마이어스의 캐릭터는 어린이 영화인 '더 캣 인 더 햇'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원작에 대한 어린이 독자의 환호를 훼손한다.
닥터 수스의 ‘더 캣 인 더 햇’(The Cat in the Hat)은 번역이 불가능하다. ‘모자를 쓴 고양이’라고 번역하는 순간 ‘캣’과 ‘햇’의 운(rhyme)은 사라진다. 마치 김소월의 시 ‘왕십리’에서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의 운을 번역하는 것과 같다.
‘더 캣 인 더 햇’은 책 전체가 그대로 운이다. 운을 영화로 옮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운은 문화와 장르의 벽을 그리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로 옮긴 것은 저자인 닥터 수스의 인기와 닥터 수스의 또 다른 책을 영화화한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나’(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의 흥행 성공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운으로 가득찬 책을 그대로 영화화할 수는 없으니 이야기의 살을 붙여야 한다. 이야기는 인기 TV 드라마 ‘사인펠드’의 작가이며 ‘그린치는…’의 스크립을 쓴 알렉 베이와 데이빗 맨들, 제프 섀퍼 3총사가 맡았다. 그렇게 해서 원작과 달리 이웃에 사는 아저씨 퀸(알렉 볼드윈)과 베이비 시터 미시즈 콴(에이미 힐)이 등장하고 엄마(켈리 프레스톤)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한다.
그러나 ‘그린치…’의 주인공이 짐 캐리, ‘더 캣 인 더 햇’의 주인공이 마이크 마이어스라는 점은 두 영화가 똑같이 닥터 수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는 사실을 무색케 한다. 마이어스가 누군인가. ‘오스틴 파워스’(Austin Powers) 시리즈의 화신 아닌가.
적어도 미국에서 성장과정의 통과의례가 되버린 ‘더 캣 인 더 햇’. 그 안에 배어있는 유년의 순수함을 마이어스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마이어스는 ‘더 캣 인 더 햇’에 어른들의 짖궂은 상상력을 덧칠한다. 잘 생긴 퀸이 복대를 끄르는 순간 풀어져 나오는 뱃살과 아들과 엄마 사이에 오가는 대화 “다른 사람이 엄마였으면 좋겠어” “나도 다른 애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불편한 느낌을 준다.
가장 불편한 장면은 캣(마이어스)이 액자 속의 엄마의 사진을 펴는 장면. 액자 속의 사진에는 엄마의 어깨 선까지 나와 있는데 맨 살을 드러내고 있다. 캣은 액자의 사진을 브로 마이드처럼 펼친다. 그 순간 캣의 모자가 쑥 올라가고 꼬리가 위를 향한다. 누드 사진과 발기를 암시하는 이 대목을 ‘오스틴 파워스’가 ‘더 캣 인 더 햇’을 오염시킨 것이라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아들 콘래드(스펜서 브레슬린)가 옆에서 함께 사진을 보고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동양인으로 설정된 베이비시터 미시즈 콴이 처음부터 끝까지 잠만 자고 캣의 노리개가 되는 부분도 기분을 상하게 한다. 캣은 미시즈 콴을 옷걸이에 걸어 매달거나 보드처럼 타고 다닌다.
그런데 이 영화의 등급 PG다. 감독인 보 웰치도 한 인터뷰에서 한 장면도 자르지 않고 PG를 받은 게 충격(Shock)이었다고 고백했다.
‘더 캣 인 더 햇’이 어린이 영화다운 점은 디자인이다. 마을과 집, 캣을 포함한 등장인물의 의상, 환상 속의 나라는 멋진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건 아마 웰치 감독의 이력과 관계있는 듯하다. 웰치 감독은 ‘멘 인 블랙’과 ‘배트맨 리턴’ ‘비틀주스’ 등 20여 편에서 프로닥션 디자인을 맡았고 장편영화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