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어둠 속에서' (Night Moves)…느린 리듬 속 빛나는 섬세한 긴장감이 압권
어둠 속에서 (Night Moves)감독: 켈리 레이차드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다코타 패닝, 피터 사스가드
장르: 드라마, 스릴러
등급: R
어둡고 느리다. 하지만 이는 깊고 진중하며, 섬세하고 지적이란 의미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대사량도 적다. 그마저도 짧고, 뭉툭하다. 그러나 그 간결한 대사들을 통해 표현되는 주인공들의 복잡한 심리는 날카롭고도 묵직하게 스크린 밖으로 전달된다. 적어도 영화 '어둠 속에서(Night Moves)'에 있어선 그렇다.
영화는 세 명의 급진적 환경운동가, 조시(제시 아이젠버그), 디나(다코타 패닝), 하몬(피터 사스가드) 의 뒤를 쫓는다. 각기 다른 배경의 세 사람이지만 하나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신념만은 뚜렷하다.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는 수력발전 댐을 폭파시켜버리겠다는 목표다. 이들의 움직임은 유난스럽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조용하고 은밀하며 여러 의미에서, 일상적이다. 농업용 비료를 가공해 수제 폭탄을 만들어 쪽배를 젓고 가 댐에 설치해놓고 조심스레 자리를 뜨는 과정조차 큰 위기감없이 그려진다.
댐이 폭파되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돌아가는 길에 검문을 받게 되는 상황을 통해, 그제서야 조금씩 진짜 위기와 갈등의 시작을 알린다. 거사는 끝났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댐을 폭파시킨 후 일상으로 돌아가 그 어떤 뉴스에도 눈과 귀를 닫은 채 서로 연락을 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려하지만, 의도치 않게 폭파 현장에서 캠핑 중이던 여행객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헤어나보려 애를 쓰지만, 죄책감은 이들을 엄습하고 불안감은 사방에서 밀려든다. 그 충격으로 인해 서로가 어디로 튈 지 모른다는 불신까지 생겨나면서 이들의 일상은 조금씩 멍들고 허물어져간다.
'어둠 속에서'가 현저히 느린 속도 속에서 스릴을 빚어내는 감각은 참으로 놀랍다. 인물의 심리가 불안정한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미묘한 소리, 사소한 움직임에서조차 은밀한 두려움과 서늘한 긴장감을 만들어가는 감독의 세밀함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를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극적인 사건없이 차근히 만들어나가는 내공 또한 후반 들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더 나아가 영화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극단적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는 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자성으로까지 이어지며 그 주제의식을 또렷이 드러낸다. 결코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심리적 동요와 이로 인해 서로 뒤엉켜버리는 인물간 충돌의 과정을 낮고 고요한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빛만으로 표현해 낸 제시 아이젠버그와 다코타 패닝의 연기가 수려하다.
또 하나 '어둠 속에서'가 비범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댐을 폭파한 다음 날 아침 조시가 일하던 농가의 가족들이 뉴스를 듣고 무심하게 '그런 댐이 몇 갠데 그거 하나 폭파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말을 흘릴 때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주인공 세 명의 신념이 일순간 퇴색되는 듯 느껴질만큼 효과적 방법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장면으로 인해 이후부터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멘탈 묘사가 더 다층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뤄진 듯 싶기도 하다.
인디영화계에서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한인 자매 김새미·김새롬씨가 각각 프로듀서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내달 5일까지 열리는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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