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앤절루(Maya Angelou, 1928- )는 현존하는 미국 작가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편에 속한다. 그녀는 시인으로서도 유명하지만 6편에 의한 회고록을 통해 흑인이면서도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한 입지적 노력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후진 아칸소 주에서 태어나 극심한 가난과 무지, 궁핍 속에서 자라났다. 8세에 강간을 당했으며 틴에이저 때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춘부 생활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당시 그녀는 웨이트리스, 댄서, 가수는 물론 매춘부로까지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그녀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녀는 당시 핌프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가 도박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잠시 몸을 팔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한달 동안 매춘부 생활을 했다고 적었다.) 그녀는 16세에 미혼모가 되었다.
그녀의 저서는 내셔널 북 어워드나 퓰리처 상에 여러 번 올랐다. 그리고 적극적인 민권 운동, 아프리카에서 벌린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으로 인해 무려 30개 이상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1993년, 클린턴씨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On the Pulse of Morning"이란 축시를 낭독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로버트 프로스트가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축시를 낭독한 후 두 번 째 누린 영예였다. 그것도 흑인의 신분으로.)
8살에 불과했던 소녀에게 강간한 남자는 바로 친어머니의 남자 친구였다. 사건 직후, 그는 체포되어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그러나 감옥에 가기 전에 린치를 당했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아 사망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마야 앤절루는 몇 년 간 말을 잃었다. 완전히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입을 열면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색칠한 새"를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저지 코진스키는 6살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폴랜드 농촌을 떠돌다가 한 포악한 농부에 의해 변기 속에 집어 던져진다. 그 충격으로 인해 그는 벙어리가 된다.
그는 말을 못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어도 부모를 찾지 못하고 고아원을 전전한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무렵, 시골에 아이를 맡겼던 부모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과 재회한다.
전쟁을 통해 겪은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모든 감정이 무디어져서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들을 달래보려고 부모는 한 스키장에 휴양을 보낸다. 거기서 코진스키 소년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몇 주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린다. 그러면서 언어 기능을 회복한다.
한국 전쟁 발생 후, 부산 피난시절 시인 서정주씨가 한동안 정신병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은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는 당시 무수한 환청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주위에는 그를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구상, 오상순, 유치환 같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계속되는 환청으로 인해 그는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문학적 자서전"(민음사, 1975)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반가움을 말로써 표현할 마음의 아무 여유도 아직 못 회복한대로, 그를 따라갈 때나, 그의 가족에게 소개받을 때나, 또 그들 속에 한몫 끼여 앉게 된 때나 늘 항시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별로 만든 인형처럼 까맣게 잠잠하기만 해서, 그와 그의 식구들의 속을 무던히는 썩였을 것이다."
뇌졸중에 걸리면 흔히 언어 능력을 상실하고 회복이 되려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심인성 실어증은 회복이 빠른 게 특징이다. 세대는 달랐어도 이 세 작가가 경험했던 실어증은 정신적 충격에 의해 발생한 "심인성 실어증" (Psychogenic Mutism)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