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에서 여주인공 아니나는 백작의 침실에 들어가 잠 속으로 떨어진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약혼자 엘비노는 질투에 싸여 그 자리에서 파혼을 선언한다. 나중에 그녀가 진정한 몽유병 환자였음을 깨닫고는 그녀에게 용서를 청하고 결혼을 함으로써 가벼운 희곡으로 막이 내린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 누구나 몽유병을 심각한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엘비노도 나중에라도 부인이 몽유병 상태에서 무책임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몽유병은 10-15세 아이들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부모에게는 큰 걱정거리야 되겠지만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또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저절로 치유된다.
그러나 성인에서 발병하는 몽유병은 폭력이 동반한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이들은 보통 수동적이고 쉽게 침대로 이끌려 잠을 자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의 경우, 몽유병 중 행동이 민첩하고 충동적이어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기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들이 시행하는 행동 중 제재를 받는 경우, 반항하고 공격적이 되는 경향이 크다. 근래 통계에 의하면 성인 몽유병의 2.1%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소되지 않으며 치료를 청하지도 않는다. 폭력의 정도가 약할수록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때문이다. 1974년 한 범죄 정신과 의사는 50명의 폭력을 동반한 몽유병자를 조사한 유명한 보고서가 있다. 50명 중 47명은 남자였고 이들의 나이는 27세에서 48세 사이에 펴져 있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집안 내력에 몽유병, 야뇨증, 수면경악 같은 경험도가 일반인들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드물지만 몽유병 중 살인까지 하는 수도 있다. 그 최초의 기록은 1846년 보스턴에서 한 남자가 창녀를 살해하고 유곽까지 방화한 사건이 있었다. 이 모든 행동이 몽유 상태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여 범인은 무죄 방면된 적이 있다. 이것이 몽유병을 무죄 변론으로 이용한 사상 첫 케이스다.
의학 서적을 찾아보면 학문적인 케이스로 1878년에 첫 보고가 나타나 있다. 당시 28세의 한 남자는 몽유병과 함께 무서운 악마가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생생한 수면 경악을 경험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밤중에 깨어 18개월이 된 아들의 머리를 벽에 찧어 죽였다. 그는 자기 가족을 공격하는 야생 동물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후에 재판관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몽유병으로 인해 범인이 자기가 행위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33년, 31세의 한 소방관이 잠에서 깨어났다가 자기 손에 부삽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옆에는 부인의 머리가 짓 이겨져 죽은 시체로 넘어져 있었다. 자신이 죽은 것을 알고는 그는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침대에서 나온 것이나 부삽을 가지려 밖에 나간 모든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부인과 화목한 관계여서 살인을 저지를 동기도 없었다.
몽유병을 이유로 해서 살인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가 전 세계를 통해 20-30건에 달한다. 이런 경우 법원에 대단히 큰 골칫거리를 제공한다. 잠을 자는 상태에서 어떤 목적이 있는 듯 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몽유병을 내세운 무죄 변론을 설득력이 그리 크지 않다. 배심원들의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지리에 밝고 층계를 오르고 운전 사고를 내지도 않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에게 친숙한 상대방(주로 부인)의 얼굴을 몰라볼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게다가 살해의 동기를 전혀 이해하기 힘들다. 미리 준비한 것 같지는 않아도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잠이 들어 있으며 깨어나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또 후회를 하고 있으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슷한 사건을 갖고도 법정에 따라 아주 반대가 되는 판결이 내려지는 수가 적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