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서 구하소서 (Deliver Us From Evil) 감독: 스캇 데릭슨 출연: 에릭 바나, 에드가 라미레즈 장르: 공포, 액션 등급: R
엑소시즘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공포 영화 장르의 최고 소재다. 악령과 거기 빙의된 사람, 그리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퇴마의 과정을 쫓는 영화의 흐름은 이미 수십년동안 반복된 패턴이다. 하지만 이는 곧 공포 영화의 '성공 공식'이란 뜻도 된다. 어느 정도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이를 '어떻게' 펼쳐 보여줄까의 문제다. 어떤 방식으로 각종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특수 분장과 VFX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것인지가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신작 영화들의 숙제다. 자칫하단 엉성한 비주얼로 장르적 관습만 답습하는 질 떨어지는 B급 영화로 전락하기 십상이라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영화 '악에서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는 꽤나 성실하게 그 숙제를 해 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단골로 만들어 온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손을 댄 덕에 그 '때깔'이 좋아졌고, 흥미로운 공포 영화를 꾸준히 연출해 온 스캇 데릭슨 감독이 노련한 솜씨로 작품의 호흡과 리듬을 조절한 덕이다.
영화가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 부터, '악에서 구하소서'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뉴욕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에서 강력계 형사로 활약하고 있는 랄프(에릭 바나)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 사건들을 경험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악령이나 빙의를 믿지 않았던 그는 구마의 능력을 지닌 젊은 사제 멘도자 신부(에드가 라미레즈)를 만나며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나가지만, 자신의 가족마저 여기 휘말리게 되면서 더욱 급박하고 간절하게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스캇 데릭슨 감독은 이 평범한 이야기 진행을 토대로 시각과 청각 양면 모두에서 보는 이가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요소를 효과적으로 배치시켜 자신의 연출력을 자랑한다.
특히 악령 든 이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 파리하고 창백한 동양적 귀신의 이미지와 거칠고 흉터 가득한 서양적 괴물의 이미지를 고루 빌려 쓰며 시각적 충격을 던진다. 예고없이 불쑥 동물이나 악령의 이미지를 등장시켜 관객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솜씨도 발군이다. 극의 흐름과 상관없는 트릭으로 보는 이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장난질이 얄밉기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관객을 긴장시켜야 할지 정확히 아는 타이밍과 노하우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진절머리 날 정도다. 눈을 감고 있어도 공포가 귀로 느껴지는 경지다. 스산한 음악도 그렇지만 손톱으로 벽을 긁는 소리, 아득히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등이 청각적으로 공포심을 자극한다.
마지막 엑소시즘 장면에서 터져나오는 응축된 에너지의 강도도 놀랍다. 랄프와 멘도자 신부가 악령과 대치하며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긴장감을 최고 수치로 끌어 올린 상태에서 수십여분간 쉬지 않고 내달린다. 악령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인물의 사지가 뒤틀리고 이마가 갈라지는 장면은 끔찍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 반항하다 물러나고 잔꾀를 쓰다 다시 기를 쓰며 공격하는 악령의 존재를 다양한 소리와 효과를 써 스케일 크게 표현해낸 방식도 훌륭하다. 그런 점에서 "제리 브룩하이머 영화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는 데릭슨 감독의 의도는 100% 성공했다.
물론, 공포 영화 자체에 흥미가 없는 관객이라면 아예 시도조차 않는 게 좋다. 그 스케일 큰 시각적, 청각적 공포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