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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보이후드'… 12년간 카메라에 담은 한 소년의 성장기

Los Angeles

2014.07.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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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 어떤 극적인 드라마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반짝이는 일상이 녹아있다. 누구나 경험했던 삶의 순간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보편적 감정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영화 '보이후드(Boyhood)'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따스히 감싸고 어루만진다. 마치 평생을 함께 해 온 오래된 친구처럼, 늘 곁을 지켜 주던 사랑하는 가족처럼.

'보이후드'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로 이어졌던 '비포' 3부작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링클레이터 감독은 6살 소년 메이슨이 18살까지 자라나며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아기자기하게 그렸다. 놀라운 것은, 12년이란 세월을 담고 있는 영화가 실제로 12년 동안 조금씩 찍어 완성한 작품이란 점이다. 링크레이터 감독은 2002년부터 매년 약 15분 분량씩 '보이후드'를 찍었다. 정해진 방향성은 없었다. 찍고 나면 그 다음을 생각하고, 그동안 찍어놓은 분량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편집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큰 그림을 완성해 갔다. 주연배우들도 12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보이후드' 속 배역을 지켰다.

기발한 아이디어이자 쿨한 도전이긴 하지만, 링클레이터 감독에게도 이번 촬영이 길고 지루하며 힘든 과정이었던 것 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제작비 지원이 끊기면 어쩌나, 투자자들이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배우들이 하차하면 어쩌나 등 걱정이 많았다. 프로젝트의 끝은 저 멀리 있는 듯 했고, 모든 게 모호했다. 절반이 지나면서부터는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모든 게 한결 수월했다."

영화의 총 촬영일수는 고작 39일. 한 해에 3~4일 정도씩만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만나 일정 분량을 촬영하고 다시 헤어져 각자의 일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지 않았던 시간에도 주요 스태프와 배우들은 늘 서로 연락하고 대화를 나누며, '보이후드'의 완성을 향한 느리고 여유로운 발걸음을 계속해 나갔다는게 링클레이터 감독의 설명이다.

"이 영화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 이자 '평생 프로젝트'였다. 12년이란 세월 동안 각자가 다른 작품활동을 하며 '보이후드'에 대한 생각을 접어둘 때도 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에는 변함이 없었다."

'보이후드'의 러닝타임은 2시간46분이다. 꽤나 긴 시간이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엔 오히려 아쉬움이 든다. 주인공 메이슨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단 생각마저 들 정도다. 거기엔 한 영화에서 12년이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 보이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배우들의 헌신이 숨어있다. 작은 소년에서 남자의 향기가 물씬 나는 대학생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메이슨 역의 배우 엘러 콜트레인도 그랬지만, 30대의 젊은 청년에서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돼 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내 보인 에단 호크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스크린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기분을 "꽤나 강렬한 체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시작 무렵엔 '야, 나도 아직 쓸만하네'하는 생각이 들다가 곧 기분이 내리막을 달리더라. 재미는 있었다. 종종 적나라하게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경악스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걸.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려 노력 중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처음으로 시도된 스토리텔링 기법인 만큼 링클레이터 감독이 다시 한번 비슷한 시도를 할 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링클레이터 감독은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촬영 종료한 지가 1년도 안돼서인지, 아직 '보이후드'가 끝났다는 것도 실감이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비슷한 형식의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는 건 너무 섣부른 일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이니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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