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작 '혹성탈출: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하 '진화의 시작')'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지능을 가진 유인원과 인간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도 그랬지만, 유인원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모션 캡처 기술 또한 놀라운 성과였다.
그 속편 격인 '혹성탈출:반격의 서막(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맷 리브스 감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조직체계와 의사소통수단을 갖출만큼 진화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유인원들과 마지막까지 살아남인 인류가 생존을 위한 전쟁에 돌입한다는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다. 단순하고 큰 움직임만 잡아내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표정과 감정의 변화까지 놓치지 않는 퍼포먼스 캡처의 기술적 완성도도 경이롭다.
제작진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껏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 보지 못한 영상을 보여줄 준비가 됐다는 자신감이다. 시저 역의 앤디 서키스를 만나 미리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는 영화 '킹콩' 속 킹콩,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 속 골룸 등 컴퓨터 그래픽만으로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캐릭터의 풍부한 표정과 감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전편이 워낙 큰 성공을 거뒀다 보니, 속편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엄청나다.
"속편을 만들 땐 항상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지가 관건인데, 전편에서 10년이 지난 시점에 시간적 배경을 설정한 것은 아주 영리한 선택이었다. 이번 이야기 속 시저는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원숭이 등 모든 유인원을 모아 낙원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고 가정도 꾸린 상태다. 이들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까지 익히며 진화해왔다. 그들 앞에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인간이 등장하며 긴장이 시작된다. 인간과 유인원 모두 각각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생존을 걸고 충돌한다. 여기서 시저의 내면적 갈등 또한 서서히 드러난다. 1편이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유인원의 이야기로 바뀌어가는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유인권과 인간의 관점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동등하게 펼쳐지는 영화라고 보면 될 것이다."
- 기술적인 면에서 1편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1편에 출연한 것도 큰 영광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스케일이나 기술력 면에서 전편을 훌쩍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역사상 가장 많은 퍼포먼스 캡처가 등장한다. 촬영을 위해 입는 수트와 그 위에 찍힌 수많은 점, 그 뒤로 엉켜 있는 케이블들은 3년전과 비슷했지만 모든게 그때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다. 웨타의 후반 작업 실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한 듯 하다. 이젠 배우의 표정과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만든 디지털 아바타의 표정 사이에서 차이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정도다. 분량의 대부분을 스튜디오나 세트가 아닌 실제 야외에서 촬영했다는 점도 큰 차이다. 덕분에 밴쿠버의 강추위, 뉴올리언스의 찜통더위와 싸워야 했지만 그 결과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 새롭게 연출을 맡은 맷 리브스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정말 좋은 감독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번 영화는 재앙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까지 던졌다. 게다가 어릴때부터 '혹성탈출'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 장래희망이 유인원일 정도였다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나."
- 킹콩, 골룸, 시저 등 사람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때는 어떻게 공감대를 찾고 연기를 준비하나.
"캐릭터 성격의 핵심을 찾는 데 집중한다. '이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에 대해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가 접근의 시작이다. 애완동물을 키워보거나 디스커버리 채널 등을 보면 동물에게도 성격과 감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집중하면 사람 캐릭터에 접근하는 것과 똑같이 배역 분석을 해도 무리가 없다. 킹콩을 예로 들어보자면, 난 단순히 25피트 크기의 고릴라를 연기한게 아니다. 물론 고릴라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했지만 그보다는 킹콩이 갖고 있을 고립감과 외로움에 더 주목했다. 사회에서 내 쳐진듯한 부랑자나 퇴물이 된 권투선수의 느낌과 감정으로 킹콩을 연기했던 것 같다."
- 퍼포먼스 캡처를 이용한 영화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퍼포먼스 캡처엔 젠더와 나이, 인종과 생김새의 제한이 없다. 창조적 상상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떤 모습으로든 탈바꿈해 연기할 수 있다. 연기란 어떻게 보면 변신의 미학인데, 퍼포먼스 캡처는 이를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려주는 기술이다. 퍼포먼스 캡처가 다음 세대의 영화계를 주도할 가장 훌륭한 스토리텔링 도구라고 확신한다. 런던에 퍼포먼스 캡처 프로덕션 & 컨설팅 스튜디오인 '이매지너리엄'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