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로 연방 공휴일이다. 황금의 3일 연휴다.
올해의 미국 연방 공휴일과 그 유래에 대하여 알아본다.
올해 (연례) 연방 공휴일은 모두 10일이다. 1월1일 뉴이어스 데이와 7월4일 독립기념일, 11월11일 베테런스 데이, 12월25일 크리스마스는 날짜로 지정됐고 나머지 공휴일은 요일로 정해져 있다. 공휴일이 토요일·일요일과 겹칠 경우 연방 공무원 등은 전날이나 다음날을 휴일로 대체한다.
1월1일 : 한해의 마감을 알리는 12월31일 자정 12시 행사로는 뉴욕 타임스 스퀘어 행사가 유명하다.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는 꽃차 등이 행진하는 로스앤젤레스 지역(패서디나)의 로즈 퍼레이드가 잘 알려져 있다.
마틴루터 킹 생일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리더쉽은 위대했다.
1963년 8월28일 워싱턴 DC에 모인 25만명 군중들이 의회 의사당까지 행진하면서 큰 불상사는 없었다. 킹 목사는 행진의 선두에 섰다.
이들은 피부색을 불문하고 미국인들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을 요구했으며 이듬해 효과적이고 철저한 내용의 관련법이 제정됐다. 이날 킹 목사가 링컨 대통령 동상 앞에서 행한 연설은 이후 “I have a dream”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에 남았다.
세계 인권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나 1968년 암살됐다.
대통령의 날 : 1971년까지 2월12일과 2월22일은 각각 에이브러험 링컨,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연방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같은 해 모든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2월 셋째 월요일을‘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선포했다.
그래서 연방법에는 이날이 워싱턴 생일로 지정돼 있으나 통상 대통령의 날로 불리기도 한다.
공화당으로 재선한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과 연방 통합의 업적을 이룬 대통령으로 사랑받고 있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시인 월트 휘트먼은 ‘캡핀, 오 나의 캡핀’이라는 시를 통해 ‘군중들의 화환과 축하가 기다리고 있는 목적지에 거의 다 왔는데 나의 캡틴은 차디찬 시체로 갑판에 누워 있다’고 한탄했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살아 있을 때도 애정 어린 국민들의 얘기들이 많았다.
소년 워싱턴이 도끼로 벚나무를 잘랐다가 아버지에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도 검증 안된 하나의 사례다.
메모리얼 데이 : 남북전쟁 직후인 1866년 뉴욕주 워털루의 한 약국 주인은 전몰 장병을 추도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가게와 상점이 하루 동안 문을 닫을 것을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에 예비역 장군 조나단 로건은 귀환 장병들을 위한 기념 행사를 추진했다.
두 기념일은 5월30일로 통합됐다.
메모리얼 데이는 미국인들에게 군인 뿐 아니라 주변의 숨진 모든 사람을 추도하는 날이지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3일간의 연휴기간이기도 하다.
국기의 날 :미국의 국기 이름은 성조기(깃발에 달린 별·Star Spangled banner)다.
13개(식민)주 대표 모임인 대륙회의는 독립선언서 채택 이듬해인 1777년 7월14일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과 다른 국기 제정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13개 신생주를 상징하는 13개 별이 새겨진 국기가 만들어졌다.
성조기의 표준 도안은 변화를 거쳐 1912년에서야 마련됐다. 현재 모양은 독립 당시 13개주를 뜻하는 13개의 흰색과 빨간색 줄에 각주를 의미하는 50개 별이 그려져 있다.
프랜시스 스콧 키 변호사가 성조기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이름의 국가를 작사했다.
독립기념일 : 1776년 7월4일은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문 초안을 채택한 날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은 미국의 건국 정신을 반영했다. 자유의 종과 불꽃놀이, 1776년 7월8일 필라델피아시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사당(현 인디펜던스홀)에서 독립선언이 공표되면서 이른바 ‘자유의 종(Liberty Bell)’이 타종됐다.
컬럼버스 데이 : 1492년 10월12일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와 일행들이 미대륙을 발견했다. 유럽인들의 탐험과 모험 정신이 이날 세계사에 또 다른 새 장을 열었다. 1905년 콜로라도주를 시작으로 여러 주에서 컬럼부스 데이를 기념일로 정했고 1937년 플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매년 10월12일을 컬럼버스 데이로 선포했다. 1971년 이후 10월 둘째 월요일로 정해졌다. 미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외지인이 컬럼부스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노동절 : 19세기 뉴욕 이민노동자들의 삶은 고단했다. 이들은 해고가 두려워 피곤해도 아파도 공장에 나가야 했다.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렸고 한 가정을 수용할 수 있는 집에 여러 가정이 들어가 함께 살아야 했고 어린이들도 노동을 해야 했다. 잠깐의 식사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다.
1872년 피터 맥과이어와 10만명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단행하고 거리 시위에 나섰다. 맥과이어는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와 단결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맥과이어는 시카고에서 목수 조직을 결성했다. 맥과이어와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은 독립기념일과 추수감사절 사이 9월 첫 월요일을 공휴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1882년 9월5일 뉴욕시에서 열린 첫 노동절 퍼레이드에서 근로자들은 ‘8시간 노동’을 외쳤다.
정치인들은 노동절을 기해 정치 캠페인을 시작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이날을 여름이 끝나는 마지막 여름 연휴로 여기기도 한다.
베테런스 데이 :1918년 11월11일 오전 11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미국은 이듬해 이날을 정전일(Armistice Day)로 기념했다.
1953년 캔사스의 엠포리아에서는 지역 재향 군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공휴일을 베테런스 데이라고 불렀다. 의회도 캔사스 출신 의원의 발의에 따라 이 날의 명칭을 베테런스데이로 바꾸었다. 이날 오전 11시에는 묵념 시간이 마련된다.
추수감사절 : 가을 수확의 기쁨을 하나님께 바치는 전국적 축제일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탄 100명 이상의 개신교도들이 신천지였던 미국 대륙에 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메사추세츠에 자리를 잡았으나 첫 겨울을 넘기면서 질병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이듬해 봄 토착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짓는 법을 배운 이들은 인디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수확의 축제를 열었다. 독립후 미국은 하루를 전국적인 감사의 날로 제정키로 했고 조지 워싱턴은 11월26일을 추수감사절로 권유했다.
1941년 의회는 매년 대통령의 선포에 따라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 연방 추수감사절이 된다고 결정했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를 거쳐 새해 첫날까지 연말 쇼핑 기간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러 이땅에 내려온 의미 심장한 날이다.
이날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고 선물을 전령사인 산타클로스와 사슴은 어린이들의 영원한 벗이다. 그리고 이날은 1년 동안 어디에 살았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는 결합의 날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가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우는 날이 돼야 한다는 반성의 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