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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한중록이 기술한 의대증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한중록](閑中錄)은 조선조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지은 저서전적 장편 회고록이다. 그 문장이 아담하면서도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있어서 예전 궁중 여인들의 우아함과 높은 품격이 배어 있는 한글로 된 우리 고전 문학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억울하게도 부왕 영조(英祖)의 명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남편을 옹호하고 있는데 사도세자가 [의대증](衣帶症)이란 병으로 고생했다는 소견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대 병환의 말씀이야 더욱 형편없고 이상한 괴질이시니 대저 옷 한가지 입으려면 10번이나 2,30번이나 하여 놓으면, 귀신인지 무엇인지 위하여 놓고, 혹 불 사르기도 하고, 가끔 쯤 순하게 갈아입으시면 천만 다행이요, 시종 드는 이가 조금만 잘 못하면 옷을 입지 못하여 당신이 애쓰시고 사람이 상하니 이 아니 망극한 병이랴.
어떤 때는 하도 많이 하니 무명인들 동궁 세간에 무엇이 많으리요. 미쳐 짓지도 못하고 옷감을 얻지 못하면 사람 죽기가 순식간의 일이니 아모쪼록 옷은 해 대려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바가 아니다."
" 그 병환이 육 칠 년에 걸쳐서 극히 심할 때도 있고 좀 진정할 때도 있다. 그 옷을 입지 못하여 애를 쓰시다가 어쩌다가 증세가 나아서 천행으로 한 벌 입으시면 당신도 다행인 것으로 아시고 더럽도록 입으시니 그 무슨 병이런고. 오만 가지 병 중 옷 입기 어려운 병은 자고로 없는데, 어찌 지존하신 동궁이 이런 병에 걸리셨는지 하늘을 불러 일 길이 없다."
"비단 군복 한 벌을 입으시려 하면 군복 몇몇 벌을 이어서 불사르고 겨우 한 벌을 입으셨다. 지어서 없앤 것이 비단 몇 궤인지 알리요. 조금 범연한 비단으로는 못하니 그때 내 간장이 얼마나 상했으리요."
[의대증]이 보이는 증세의 핵심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優柔不斷, Indecisiveness)함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씩 한다. 그런데 사도세자는 옷가지 하나 챙겨 입는 작은 문제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은 지능 저하(Mental Retardation), 우울증(Depression), 의존성 성격 장애 ( 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또는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다.
그런데 사도세자는 날 때부터 영특했다. "궁중의 기록을 보면 나신 지 넉 달만에 걸으시고 여섯 달만에 영조께서 부르는 대로 대답하시고---두 살에 글자를 배워서 60여자를 쓰시고".
물론 부인이 적은 것이니 한 수 접고 본다고 쳐도 15세에 부왕의 명으로 임금의 역할을 대신하는 대리기부(代理機務)를 보았으니 지능저하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세자는 아버지를 몹시 무서워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무예 놀이를 즐기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을 보면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
의존성 성격 장애자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들의 결정을 쉽게 따른다. 세자는 그렇지 않았다.
강박 장애 환자에서 자신이 결정한 행동으로 인해 무슨 잘못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수 십 번이고 반복해서 의식적(儀式的)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사도세자가 지녔던 [의대증]이란 강박 장애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세자는 모르는 사람이 보이는 환각 증세, 그리고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들어 남들에게 보이는 기괴한 행동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자는 강박 장애 말고도 또 다른 심한 정신 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나중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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