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성장하여 대승불교 수행자가 되어 선에 통달하여 반야다라 존자의 법통을 이은 뒤 벵골만에서 배를 타고 중국 광동에 도착.
불심천자인 양나라 국왕인 무제를 만나 명리에 집착한 불사는 “공덕이 하나도 없다” 유명한 법문을 했을 때 그때 세속의 나이 130세였다.
소림산에서 9년간 면벽좌선 후에 혜가스님이 눈 위에서 단비구법(斷臂求法)하자 법을 전했고, 보리유지와 광통율사의 질투로 독살당한 뒤 관속에 두 짝의 신만 남겨 놓고 서천으로 돌아간 이후, 인도 여행에서 돌아오던 송운이가 인도로 다시 돌아 가는 사후(死後)의 달마를 만난 이적를 남겼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