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바람직한 것을 바라다
조현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우리말에서 ‘-음직하다’라는 표현은 주로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믿음직하다’라는 말은 믿을 만하다는 의미이고, ‘먹음직하다’라는 말은 먹고 싶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음직하다’는 ‘-음직스럽다’라는 표현과도 비교할 수 있다. ‘먹음직스럽다, 믿음직스럽다’와 같이 대체가 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바람직하다’라는 말의 원 의미는 바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은 ‘좋다, 훌륭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인간이 바랄 만하다는 것이 왜 좋다는 의미가 되었을까? 나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인간이 바라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원하는 것에는 나쁜 것들도 많다. 그러니까 악이 생겨나고, 범죄가 일어날 것이다. 모두가 선한 것만을 바란다면 세상이 이처럼 타락하고, 흉포해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바람직하다’라는 말에는 모순이 담기게 된다. 악한 것도 바라는 인간이 ‘바람직한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쁜 것을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리라.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 인간이 원하는 세상일까? 힘이 있다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당연한 세상이 인간이 원하는 세상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다른 사람과 향락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 원하는 세상일까?
아닐 것이다. 순간적으로는 욕망 속에서 실수를 저지를지 몰라도 바라는 세상의 모습은 아니리라.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바람직하다는 말은 좋은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말의 ‘바람직하다’라는 말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말 이것이 내가 바라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끝내 후회하고 말 일인지에 대해서 이미 내 마음은 답을 들려주고 있다.
어떤 이는 어찌해야 할지 선택이 어렵다고 한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어 와도 좋다.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있다. 나와 달라 보이는 사람이지만 같은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이 이루어진다.
바람직한 것을 바라는 세상을 그려 본다. 우리가 모두 바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것과 실제 바라는 것이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떤 것이 이상적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바라는 것은 그른 것인 경우가 있다. 우리가 바람직한 것을 바라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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