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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좋은 게 좋은 거다

New York

2014.08.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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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우리말을 살펴보면 참 좋은 말인데 그걸 못 느끼고 사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좋은 뜻의 어휘나 표현을 나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예를 말의 타락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야단법석' '화두'라는 말이나 기독교의 '세례'라는 말은 의미가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말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 가치가 변질되어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문제의 장면에서 사용되는 것은 타락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만 타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도 타락한다. 물론 사람이 말을 타락시킨 것이겠지만 말이다.

전에 스토니브룩 대학의 박성배 선생님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원래는 좋은 의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최근에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얼마나 단순한 말인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는 나쁜 것은 좋은 게 아니라는 또 다른 단순한 명제가 담겨있다. 좋은 것을 사랑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나쁜 것을 멀리하면서 살면 그게 좋은 삶이다. 우리말의 표현은 때로 이렇게 직선적으로 삶의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은 나에게만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좋은 것이어야 좋은 것이 된다. 생각해 보면 나만 좋아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나만 좋아하는 것은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 내게만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에게는 유리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불리한 일이 어찌 좋은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일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이는 더욱 그러하다. 나만 좋은 사랑은 어찌 보면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사랑은 주고받는 사람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은 불합리하지만 참으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혼자만 깨끗한 척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보인다. 눈 감아 주면 다 괜찮을 텐데 혼자 왜 까다롭게 그러냐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나빠진다. 얼렁뚱땅 하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곧바로 문제가 생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나쁜 일을 마치 좋은 일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썩어가게 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다 이 말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포장하고서 얼마나 슬쩍 넘어갔는가? 자기만 문제가 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까지 구렁텅이 속으로 끌어들이며 얼마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타락시켜 왔는가? 같이 진흙탕 속에 있으면 누가 더 더러운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인지 의심된다. 서로가 서로의 죄를 눈감아 주면서 죄를 키워가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안전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돈이면 다 된다고 믿고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점점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옅어지고 있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주는 깨달음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나쁜 것을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은 정말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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