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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

Los Angeles

2014.09.0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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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숙/자유기고가
저녁 먹는 자리에 W씨가 멋진 '튜닉'을 입고 나타났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색감과 모양같다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W씨가 직접 디자인하고 재단해서 만든 거란다. 떨어진 단추 하나도 제대로 달지 못해 남의 손을 빌어야 하는 나는 W씨가 존경스럽다 못해 경외스럽다.

W씨는 정말로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요리도 잘하고 꽃꽂이도 잘하고 머리도 잘 만지고 옷도 잘 입고 집안도 잘 꾸미고.

오랜만에 P할배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또 날 구박했다. 네 글은 왜 항상 거기서 거기냐. 세계정세나 한국정치 상황 등 주제가 얼마나 많은데 집 청소하는 얘기, 네 외모 얘기밖에 못 쓰는데? 반론을 폈다. 나의 주특기가 주변의 자잘한 일들, 남들이 무심하게 지나칠 만한 사연들을 옆에서 수다떠는 것처럼 풀어내는 것인데 그걸 하지 말라면 글 그만 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또한 P할배가 말한 내용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쓰고 있는데 거기에 내 목소리까지 보탤 필요가 없고요. 물론 그런 고차원적인 글을 쓸 실력이 없으니까 못 쓰는 거지만.

D씨는 걸핏하면 나의 운전솜씨를 걸고 넘어진다. 지가 무슨 공주야? 귀부인이야? 왜 스스로 운전할 생각을 안 하고 데려와라, 데려가라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데? 나는 항변한다. 못 하는 걸 어쩌라고. 운전대만 잡으면 손이 덜덜 떨리는데 어쩌라고.

사람은 제각각 잘 하는 게 있는 법이다. 또한 아무리 죽을 애를 써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운전이 식은 죽 먹기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같은 사람도 있다.

2009년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맬컴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빌 게이츠, 비틀스, 모차르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공통점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을 꼽았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선천적 재능보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총 10년 동안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음악, 스포츠, 체스 등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결론이다. 햄브릭 교수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선천적 재능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이 내게 많은 위로가 된다. 못 오를 나무는 아예 처음부터 쳐다보지를 말고 열번 찍어도 안 넘어갈 나무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게 시간과 정력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이라고 혼자 안도한다.

앞으로 할배들은 왜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냐고 날 기죽이지 말기 바란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니까. 타고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를 잘 관찰하면 잘 하는 것도 한 두 가지 정도 있다는 걸 명심해주기 바란다. 순 맹탕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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