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절묘한 앙상블로 세련된 웃음 거센 바다 표현해 낸 CG 기술도 완성도에 한몫
지난 여름 한국 극장가는 사극들의 열풍으로 뜨거웠다. 특히나 '명량'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삼파전은 개봉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도 흥미로웠다.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군도' 역시 강동원의 가능성과 하정우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손예진 김남길 주연의 '해적' 역시 마찬가지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액션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상 흥행에 한계가 있고, 두 주연배우의 스타파워가 '명량'의 최민식, '군도'의 하정우 강동원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극 세 편 중 최약체로 여겨졌지만 묵직한 뒷심을 발휘하며 막판 관객몰이에 성공, 관객 수 700만을 넘어서며 '알짜 흥행'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명량'과 '군도'에 이어 북미 시장에도 상륙했다. '해적'은 오늘(5일)부터 LA CGV에서 개봉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12일부터는 라하브라, 어바인, 샌디에이고로 남가주 상영관을 넓히고 뉴욕, 시카고, 시애틀, 애틀란타, 휴스턴,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밴쿠버 등 북미 주요 도시에서도 일제히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해적'은 철저히 오락 영화를 표방한 작품이다. '사극 어드벤처'라는 장르라 불리는 것도 그럼직하다. 배경은 조선 건국 초기다. 명나라로 국새를 하사받으러 갔던 사신단은 조선으로 돌아오던 길에 바다에서 고래의 습격을 받아 국새를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보고했다가는 목숨이 날아갈 것만 같아 '해적단이 국새를 훔쳤다'고 거짓 보고를 하게 된다. 이 말을 들은 태조 이성계는 크게 노해 해적 떼를 토벌하고 국새를 되찾아오라는 명을 내린다. 해적들의 수장인 여월(손예진)은 관군의 압박을 못 이겨 국새를 가져갔다는 고래를 찾아내기 위한 모험에 나서고, 다른 한 편에서 산적떼를 이끌고 있는 두목 장사정(김남길)은 국새를 찾아 부와 명예를 누려보겠다는 야욕에 부하들을 몰고 바다로 향한다.
영화의 기본적 모티브는 역사적 사실에서 따 왔지만, '해적'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나머지를 채워 넣어 자유로이 이야기를 펼친다. 실제 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1403년까지 국새 없이 10여 년을 보내야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해적이란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두렵고도 신비로운 존재인 고래를 등장시키면서, '해적'은 그간 한국 영화가 건드리지 않았던 색다르고도 흥미진진한 영역을 야심차게 탐험한다.
진지하고 어두운 톤을 지닌 경쟁작들에 비해 세련된 유머로 무장한 점도 '해적'의 강점으로 꼽힌다. 국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적단, 산적단, 개국세력 캐릭터들의 면면은 '해적'의 오락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다 구경 한 번 못해 본 주제에 의기양양하게 바다로 떠나는 산적단의 두목 장사정과 그의 부하 철봉의 코믹 앙상블도 훌륭하고, 실존인물 3인방 이성계, 정도전, 한상질이 기존 사극에서와는 달리 엉뚱하고 코믹한 이미지로 묘사된 것도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감상 포인트다.
CG를 통해 몰아치는 바다의 분위기를 훌륭히 살려낸 영상도 '해적'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요소다. 바다가 나오는 대부분의 영상을 CG로 처리해 거대한 고래가 실제로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한 완벽한 비주얼을 연출해 내는가 하면, 최소한의 세트만 가지고도 장대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쟁 장면을 연출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주인공 여월 역의 손예진은 남자도 하기 힘든 와이어 액션은 물론 수레 추격전, 선상 전투 등의 장면을 가뿐히 소화해내며 CG로 만들어 낸 영화 속 그래픽과의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해적'은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와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이 각각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