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11년간 머무는 동안 가끔 장례식에 참석했다. 언제부터 장례식이 병원에서 치러졌는지 알 길이 없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장례식이 병원에서 열린다.
몇년 전 서울 S병원에서 친구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다. 별채로 된 3층짜리 장례동 입구에 들어섰다. 각 장례실 입구와 복도에는 수십 개의 조화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각 조화에 매달려 있는 리본에는 조화를 보낸 사람의 이름과 사회적 지위가 적혀있었다. 상주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라고 친구가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간 장례실에서는 조화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상주가 조화사절을 미리 알렸기 때문이다.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행했던 친구와 함께 입구에 자리한 접수처에 들러 조의금을 접수시키고 '식표'를 받았다. 장례실에 들어서니 상주 한 분이 꽃 한송이를 건넨다. 나는 친구와 함께 영정 사진앞에 꽃을 놓고 뒤로 물러서서 사진을 향해 절을 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안내원이 식당으로 안내한다. 친구와 함께 학교 강당 같은 식당으로 들어서니 여기저기 식탁 위에 장례실과 고인 이름의 푯말이 붙어있다. 우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직원이 설렁탕과 비빔밥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주문한 지 5분만에 식단이 차려졌다. "식사를 30분안에 마치셔야 합니다. 다음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직원 아줌마가 우리에게 건네는 부탁이다.
내가 1960년대 미국에 와서 충격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장례식이다. 직장 동료 부친의 장례식에 가서 '뷰잉(Viewing)'을 했다. 장례예배를 마치고 문상객들이 줄을 지어 열려진 관속에 누워있는 시신을 잠깐 동안 보면서 고인의 옛날을 반추해보는 순서다. 처음에는 왜 시신을 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뷰잉'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 장례식에서는 고인과 마지막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
우리는 미국식 장례식에서 '뷰잉'을 통해 고인의 옛날을 되새기고 또 고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뷰잉'을 마친 문상객들은 옹기종기 식장에 남아 고인을 추모하며 이야기 한다. 즉 미국에서는 고인이 장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상주가 주인공이 되고 있다. 장례식 참석여부와 조의금 액수는 고인보다는 순전히 상주의 영향력에 달려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속담 그대로다.
미국 일간지들을 보면 부고란이 있다. 나는 이를 자세히 읽으면서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읽는다. 사진과 함께 실린 부고란에는 고인의 생년월일과 세상을 떠난 날을 비롯해서 고인의 삶이 자세히 적혀있다. 그리고 끝에 조의금은 어느 자선단체나 장학회로 보내라고 당부하는 글귀가 있다. 한국 부고는 왜 이렇게 하지 못 할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한국 부고는 조의금에 대한 언급없이 고인의 사회적인 지위와 몸담았던 기관들, 유가족의 이름들과 사회적인 지위를 열거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