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TALK] 행복에 이르는 길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이 곳은 3대 째 평양식 냉면을 파는 유명한 '원조' 냉면집인데 평양에서 내려와 서울에 터를 잡고 함께 남향한 친지들과 고향 음식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전통이 자손에 자손으로까지 내려와 그 맛을 지켜오고 있었다.
음식 뿐만 아니라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 중에도 가족들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많다.
정 트리오로 잘 알려진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씨 가족은 일곱 명의 형제와 자매가 있었다. 얼마 전 작고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곱 자녀가 모두 악기를 배웠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적인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고 그 중 셋은 저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필자 역시 월남한 바이올린 연주자로부터 서양 음악을 접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동요와 가곡을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친지의 결혼식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무대에 불려다니며 노래를 했다.
첫 데뷔(?)는 4살쯤 되었을 때인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던 경험 때문에 어린시절에는 '내가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음악가의 길을 가게 된 것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로를 통해 음악가의 길로 들어선 경우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대개는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오디션이나 콩쿨 같은 과정을 거쳐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재등용 경로가 다양해졌고 특이한 과정을 거쳐 음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사람들도 많다.
전도유망한 명문대 생물학도가 취미로 하던 악기 연주가 좋아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며 학업을 정리하고 고달픈(?) 비올리니스트의 길로 접어드는가 하면 뉴욕의 유명 투자은행 간부로 일하던 또 다른 지인은 회사를 뛰쳐나와 로컬 연주 단체에 몸담으면서 음악가로 살아갈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기도 한다.
세기의 결혼식이었던 영국 왕실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던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는 현역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최고의 오페라 가수였다.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을 호령했고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그녀가 부른 오페라CD 한 장은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는 엘리트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가수가 아니다. 아버지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원주민이었고 그녀 역시 20대 후반까지 식당 종업원이었다.
오페라와 크로스오버를 넘나들며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폴 포츠(Paul Potts) 역시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평범한 전화기 판매원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영국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배경과 재능이 소개되면서 단숨에 엄청난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로 스타덤에 올랐다.
폴 포츠나 키리 테 카나와처럼 평범한 삶을 살던 그들이 했던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화려한 무대에서 멋진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긴 했지만 만약 평생 그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은 과연 불행했을까?
주변에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엄마가 작곡가이거나 평범해 보이는 아빠가 아마추어 첼리스트인 경우가 종종 있다. 예술 분야는 저명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형제와 가족 혹은 또래 동료들로부터 받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것이 부모의 예술적 소양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정트리오를 길러낸 고 이원숙 여사는 음악을 공부하신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분야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졌고 그 영감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모든 아이를 재능 있는 음악가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려라. 단지 그들이 음악과 만나도록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환경을 조성해준다면 아이들은 그 안에서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것만으로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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