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싱겁게 살기
조현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말에서는 맛을 나타내는 어휘로 사람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보고 '짜다 달콤하다 구수하다 느끼하다 싱겁다'와 같이 표현한다. 맛의 느낌과 사람의 느낌을 연결하는 것이다. 짠 사람은 주로 야박하고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달콤한 것이나 구수한 것은 목소리를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내게 들려오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나 옛 추억을 되살려 주는 목소리에 우리는 달콤하다거나 구수하다는 말을 한다. 느끼하다는 말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의 느낌이다. 계속해서 견디기가 힘들다. 주로 음흉하거나 천연덕스러운 태도의 사람을 비유하며 쓰는 표현이다.
'싱겁다'는 말은 '짜다'와 반대가 되는 말이다. 하지만 비유를 할 때는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짜다'를 구두쇠의 모습을 설명할 때 사용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고 잘 베푸는 사람을 '싱겁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싱겁다'는 의미는 속이 꽉 차 있지 않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싱거운 사람이라는 말은 주로 쓸데없는 농담을 자주 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쓴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자꾸 하는 사람에게 '실없다'는 표현 대신 '싱겁다'고 하는 것이다. 실없다는 말은 미덥지 않다는 뜻이다.
속이 꽉 차 있지 않고 실속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싱거운 사람'이 좋은 의미가 될 수 없다. 허나 싱거운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래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싱거운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지만 싱거운 사람은 주로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별로 웃기지 않는 이야기도 자꾸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다. 왠지 서먹한 순간에도 싱거운 사람은 빛을 발한다. '사람 참 싱겁긴!'이란 표현에 나무람의 느낌은 적다.
사람들을 만날 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으면 만남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 때 누군가가 싱거운 소리로 어색함을 깨뜨려 주면 고맙다. 그런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모임에 '소금'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된다.
싱거운 사람이 있어야 모임도 재미가 있다. 가족의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는 싱거운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싱겁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실수를 두려워하고 분위기를 깰까 봐 조심하지만 그런 이상한 분위기는 유지하는 게 더 문제다.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싱겁다'가 '짜다'의 반대말은 아니지만 시사해 주는 점은 많다. 사람을 대할 때 짜게 굴면 더 이상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 짠 맛에 인상을 절로 쓰게 될 것이다. 어쩌면 '퉤퉤!' 하고 뱉어 버릴 수도 있다. 있는 것을 숨겨 두고 베풀지 않는 모습이 좋을 리 없다. 가진 것은 적어도 서로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같은 단어는 아니지만 '쥐어짜다'라는 말도 함께 연상이 된다.
요즘 나는 싱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도 생활도 싱겁게 살 필요가 있다. 몸속에 화와 분노를 담지 말고 불같은 성격을 '꺼뜨리고' 살 필요가 있다. 무조건 참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그라지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참는 것과 없애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싱겁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서로에게 웃음이 되고 활력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의 싱거움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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