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주름살로 덮이고 눈물로 범벅이 된 한 노인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고 그 노인이 무엇인가를 호소하시는 것이 보인다. 아무나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화면 밖의 나에게도 계속 호소하고 계셨다.
그 얼굴이 너무도 늙고 불쌍해서 내 눈에도 문득 눈물이 고인다. 도대체 이 노인네는 얼마나 큰 고통과 설움을 견뎌왔기에 얼굴이 저처럼 아픔의 주름골로 난도질당한 듯 상해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정시하다가 나는 불현듯 그것은 한 한국 여인의 얼굴이고 나도 그와 같은 얼굴을 가진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생존하는 위안부 가운데 한 분임을 깨달았다. 이때가 나에게는 처음으로 이 위안부들께 내 마음을 연 순간이다.
위안부란 누구를 말함인가. 1931~1945년 사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그 점령국가들(한국.중국.대만.필리핀 등)로부터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끌어가서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싸우는 일본 군인들의 집단강간을 위한 성노예로 삼았다가 버리고 간 20만 명 이상의 아시안 여성 희생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패전 후 이들 여성은 대부분이 사살당하거나 굶주림과 질병 중노동의 결과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죽었다. 오직 일부 여성들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은 85~90세가 된 고령의 할머니들이고 현재 한국에는 54명이 생존해 계신다.
그러나 '위안부'란 명칭은 남을 위로해 주는 사람 같은 오해나 미망을 일으키는 위선적 이름이다. 지난 2012년 7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국무부 간부들에게 명백히 지적한대로 이들 여성을 "위안부라 부르지 말고 강요된 성노예(forced sex slave)라 불러야 한다"는 말씀은 당연하고 옳은 말이다.
이 성노예들에게 더욱 슬픈 사실은 이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고 더욱이 서방세계에는 완전히 숨겨져 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한국이 개개인의 저항을 불허하던 가난과 핍박의 식민시대였고 여성의 존재가 경시되던 유교사회였었다.
그나마 가장 가난하고 못배우고 힘없는 시골 농민의 딸인 미혼 여성이나 겨우 어린애 티를 벗은 여자애들은 집중적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전쟁 전이나 후에도 이들의 생사나 운명에 대해 그 책임을 묻거나 찾는 목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또한 위안부에 관한 기록은 일제가 진작에 계획적인 파괴와 소각으로 말살시킨지 오래였고 행여 살아 돌아온 여성이 있을지라도 희생자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족이나 우리 사회가 그들을 큰 수치로 믿었기 때문에 이 성노예의 역사는 40여 년 이상 1990년대까지 국가의 비밀이자 절대적 금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목격하듯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나 유대인 홀로코스트 등 20세기에 저질러진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의 역사는 우리에게 정확히 인식되고 존중되며 세계 역사 책에 잘 기록되어 인류 역사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윤정옥 교수를 비롯한 한국과 일본의 여성운동가들의 노력 용감한 첫 증언자 김학순을 시작으로 여러 증인들의 발언 양심적인 일본인 교수 요시미 요시야키 등의 일본 자위대 위안부 기록 발견 등에 떠밀려 1993년 일본 내각대신 고노 요헤이는 빈약하게나마 일본 정부의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정책을 만들고 여성들의 강제모집과 운송 또 위안소 경영에 관여했음을 미약하나마 인정한 것이다. 또 차후의 역사 연구와 교육적 사실 확보 등을 제안했고 생존자 보상 문제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후 20여 년간 이들 생존자들은 실행되지 않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서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벌써 2000번 이상이나 되었다.
한편 2000년도 유엔 결의안 1325와 1820을 비롯해 국제노동조합 인권단체들 여성전쟁범죄재판기구 등 국제사회와 기관에서 한목소리가 되어 일본의 위안부 정책은 인권을 유린한 범죄였음과 이들 희생자에게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보상을 권고해왔다.
특히 미국 하원에서 통과시킨 H.Res. 121 (2007) 결의안은 다시금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과 그리고 보상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 많은 증언과 국제사회의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더욱이 현재의 아베 일본 정부는 1993년의 고노담화마저 번복시키려 하고 있으니 일본은 독일의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복구의 노력을 본받기는커녕 어째서 이처럼 딴짓만 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일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그 뻣뻣한 고개를 수그리지 못하는가?
그처럼 악랄한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인명과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고도 무엇이 그처럼 일본의 오만한 행동을 허용시키는가? 일본의 전쟁범죄와 그 범죄자들은 아직도 응당한 벌을 받고 있지 않다(그들은 야스쿠니신사에서 애국자로 모셔지고 있다).
오늘날 위안부 문제는 54명의 생존자 보상과 사과의 문제를 넘어섰다. 이제는 한국이나 아시아뿐 아니라 전세계에 더욱 큰 여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우리 한인 동포들은 조국인 한국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더 복되고 안전한 아시아와 미국의 장래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독자 여러분 기억합시다. 변화는 문제의 중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그 가장자리에서부터 변화의 틈새가 생겨나는 것을. 여기 조국과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맨해튼에서 인권옹호와 세계평화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위안부'에 대해 오는 10월 23일 맨해튼에서 중요한 행사('Comfort Women: Why Japan's 200000 WWII sex slaves matter today')가 열립니다. 행사는 올 소울스 처치(All Souls Church @ 80 St & Lexington Ave)에서 오후 6시30분에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이웃들과 함께 참가하여 인간다움과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과거 일본이 저지른 반역의 역사를 널리 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