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음악이라면 독일이, 미술이라면 프랑스가 마치 그 종주국처럼 이야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인 면이나 국민성 같은 것들도 살펴보아야겠지만, 그보다는 두 나라의 공기와 햇빛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프로방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해 본 적이 있었다.그 무렵 내가 공부하고 있었던 독일의 공기는 정말 음악을 하기에 딱 알맞는 것이어서, 모든 소리란 소리들은 서늘하고 투명한 독일의 공기를 통과하며 그것들이 가진 최상의 퀄리티로 여과되어 귓가에 울려왔다.
그에 비해 방금 국경을 넘어 온 프랑스의 햇볕은 찬란함 그 자체로, 지상의 모든 사물들이 빛이 닿는 순간 분해되어 수 많은 색의 입자로 반짝이며 끊임없이 움직거리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프로방스에는 가는 곳마다 인상주의 화가 고흐와 세잔느의 자취가 가득했다.
때는 9월말이어서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은 한 풀 꺾여 한층 부드럽고 맑은 빛으로 고흐와 세잔느가 사랑하고 열심히 화폭에 담았던 산이며 들판, 고을의 거리들을 비추고 있었고, 햇빛에 비친 나무 그림자들이 그 지방 특유의 흰 회벽에 드리워져 기묘한 아라베스크 무늬를 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아를르며 아비뇽, 엑상 프로방스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전통적 회화기법을 버리고 색채에 집착했는지를 단번에 이해해버렸다.
일상의 모든 색은 빛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고 믿으며 그 빛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사물의 색채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리고자 아틀리에를 버리고 자연으로 뛰쳐나온 인상주의 화가들. 그들이 활동하던 19세기 말부터 음악은 미술 유파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이후 프랑스는 독일의 독주를 막고 음악계의 또 하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음악에 있어서의 인상주의는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와 라벨Maurice Ravel(1875-1937)에 의해 대표된다.
인상주의 미술이 선보다는 색채의 인상에 방점을 둔 것처럼, 인상주의 음악은 그 전까지 가장 중요시되던 형식이나 선율이 아닌 음향의 색채와 곡 전체의 인상에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여 그 전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길을 열었다.
기존의 화성에서 반 발자국 정도 벗어난 미묘한 화음진행, 어딘가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음계와 분위기, 보다 자유로워진 형식, 색채감이 풍부한 음색 등이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으로, 인상주의 음악을 소위 '현대음악'의 첫 장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상주의 음악을 한 번 들어볼까 하는 분들에게 드뷔시의 초기 피아노곡 <두 개의 아라베스크deux arabesque(1888)> 를 권하고 싶다.
아라베스크란 이슬람 사원의 벽 등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문양으로, 아름다운 곡선에 꽃, 덩굴식물 등 자연의 모습을 변형시켜 섞은 무늬를 말한다.
드뷔시는 이 짧은 모음곡에서 자연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를 섬세하면서도 소박하게 그려내었다.
꿈꾸는 듯 아름다운 선율이 덩굴무늬가 끊임없이 뻗어나가듯 몽롱하게 이어지는 첫 번째 곡과 미묘한 장식음들이 반복되며 하나의 곡선을 이루는 두 번째 곡 모두 인상주의 작품답게 투명하고 우아하다.
마치 햇빛에 반사되어 흰 벽 위에 흔들거리는 프로방스의 인동덩굴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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