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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있다고 대장내시경…지나친 걱정은 병이다

'건강염려증' 혹시 나도?

작은 증세에도 큰 병 걸렸다 확신
진단 결과 아니라는데도 못 믿어
병원 바꿔가며 CT·MRI검사 되풀이
'방사선과다노출땐 암 발생 위험'
불안·우울 증세에 일상생활도 지장
심할 경우 약물·상담 치료 필요


박모(61)씨는 올 초부터 변비가 심해졌다. 일주일씩 대변이 나오지 않고 설사가 잦았다. 식욕이 떨어져 한 달 새 체중이 3~4㎏ 빠졌다. 박씨는 불현듯 2년 전 대장암수술을 받은 고교 동창을 떠올렸다. 그의 증상과 자신의 증상이 거의 같았다. 박씨는 '나도 대장암이 아닐까'라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병원을 찾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암이 아니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대장내시경·전신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검사를 받았다.

대형 병원에도 갔지만 암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박씨는 혼자 끙끙 앓았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건강염려증 의심' 진단을 했다. 지난달 약물과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박씨는 "아직도 가끔 내 몸에 큰 병이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평소 자신의 건강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건강을 챙겨도 병이 된다. 이른바 '건강염려증'이다.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공포와 믿음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말한다. 심한 경우 질병으로 분류된다.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염려증 환자는 최근 5년(2009~2013년) 동안 매년 4000~8000명, 연평균 5683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난을 떤다'고 주변에선 지나치기 쉽지만 건강염려증은 엄연한 병이다. 주로 정신과에서 진단한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을 활용한다. ▶신체적 징후에 집착해 심각한 병이 있다는 공포(믿음)를 느끼거나 ▶의사가 문제없다고 해도 공포(믿음)가 계속되고 ▶스트레스가 심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생활에 지장을 받으며 ▶증세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다.

건강염려증 환자의 공통점은 '의료 쇼핑'이다. 병이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돈다. 김모(63·여)씨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중 안 가본 데가 없다. 지난해 배에 통증이 생기면서다.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등 안 해본 게 없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다. 이제는 배 대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시 여기저기서 머리 검사를 받았다. 결국 1년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상담 치료를 받은 뒤 나아졌다.

서모(74·여)씨도 병원에 가는 게 일이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한다. 두통·안구통증·가슴박동·위장병·알레르기·엉덩이관절통증·다리 저림…. 끝이 없을 정도다. 유명 병원을 돌며 CT 검사를 받는다. 원인을 모르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첩약을 지어 먹는다. 2년 새 1000만원 넘게 썼다. 서씨는 "남 보기엔 멀쩡하고 병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아픈데 어떡하느냐"며 "의사들도 잘 모른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병원을 돌며 CT나 X선 검사를 하면 방사선에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방사선에 자주 노출되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고 경고한다. 가령 전신을 촬영하는 PET-CT 검사를 하면 12mSv(밀리시버트·방사선 수치 단위)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자연에서 1년간 노출되는 방사선량(3mSv)의 네 배에 해당한다. 정부가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5일 PET-CT 전 환자에게 방사선 피폭량과 영향을 설명하라는 안내문을 만들어 일선 병원에 배포했다.

건강염려증은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지만 주로 50대 이후가 심하다. 삼성서울병원 전홍진(정신건강의학)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아픈 데가 많아지면서 불안과 공포에 더 민감해진다"며 "특히 여성은 폐경 후 여러 가지 신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환자 현황을 보면 50대 이상이 전체 환자(3941명)의 66%(2588명)를 차지했다.

신종 질병이 발생하면 건강염려증이 증가한다. 2011년에는 환자가 8488명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20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자 '나도 혹시'라는 불안감이 번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우종민(정신건강의학) 교수는 "신종 플루 유행 시기에도 건강염려증 환자가 많았다"며 "이런 사람들은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건강염려증을 없애려면 약물·상담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대개 우울과 불안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항우울제 등을 먹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효과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다. 삼성서울병원 전 교수는 "'몸이 아프면 큰 병'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인지행동 치료가 더 중요하다"며 "우선 검사를 받게 하고, 왜 큰 병이 아닌지 의사의 설명을 듣게 하면 불안과 공포를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차병원 이윤경(가정의학) 교수는 "내가 겪는 통증이나 변화는 다른 사람도 다 겪는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 하루 6~8시간 숙면을 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잠을 잘 자야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이 나오는데, 이게 통증을 이겨내고 우울한 감정을 없애준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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