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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속담의 비밀

New York

2014.12.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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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한국어 교육에서 속담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속담이 한국인의 사고와 문화를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다. 하지만 의사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속담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은 매우 떨어진다.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속담을 별로 쓰지 않으며 외국인의 경우라면 사용의 필요성이 더욱 적다. 굳이 외국인에게 가르쳐야 한다면 이해의 차원에서 자주 쓰는 속담만 가르치면 된다. 물론 한국어를 아주 잘하게 되면 속담을 표현하게도 될 것이다.
하지만 재외동포 아이들이나 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속담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옛 조상의 나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에는 옛 풍습이 그대로 담겨 있기도 하다. 속담이 좋은 교육 자료라고 해서 무조건 가르칠 수는 없다. 시간여행의 안내를 위해서는 속담에 맞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단순하게 속담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없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도 가고, 지금은 먹지 않는 음식도 먹고, 지금은 없는 직업의 사람들도 만나는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 보면 옛날 학교인 서당(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도 가게 될 것이다. 서당에서 천자문도 읽고, 사서삼경도 읽어야 할지 모른다. 포도청(목구멍이 포도청)에 가야할 수도 있다. 재판장이 되기도 하고, 범인이 되기도 한다. 늘 가까이 하는 수돗물을 떠나 우물가(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에 가서 물도 마시게 될 것이다. 버드나무 잎을 띄운 물을 마시며 낭만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금강산(금강산도 식후경)도 갈 수 있다. 일만이천 봉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게 될 것이다. 장날(가는 날이 장날)에 장터 구경도 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여행에서는 해야 할 일도 많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굴뚝(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에 연기도 나게 하고, 노를 젓는 사공(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도 되고, 나무를 베는 도끼질(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도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절에서 탑(공든 탑이 무너지랴)도 쌓아 보고, 옛날의 장관인 정승(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도 된다. 짚신(짚신도 짝이 있다)도 신고, 외나무다리(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도 건넌다. 호랑이(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도 만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예전에는 호랑이가 참 많았다. 속담을 통해 옛 생활 풍습을 경험하는 체험 학습의 장이 열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여행의 별미인 음식도 맛보게 된다. 요즘에는 거의 먹을 일이 없는 콩도 구워 먹고(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 김칫국도 마시고(떡 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비지떡(싼 게 비지떡)도 맛보게 된다. 어쩌면 꿩(꿩 먹고 알 먹기)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떡은 정말 많이 먹게 될 것이다.(누워서 떡 먹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속담은 과거로 가는 여행이다. 아이들과 어른이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준다. 속담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사를 가르치고 옛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한다. 한국어 교실이나 국어 교실에서 속담 수업이 더 재미있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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