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 (Exodus:Gods and Kings) …보라! 이집트의 재앙을, 홍해의 기적을 …
'엑소더스:신들과 왕들(Exodus:Gods and Kings)'는 대단한 영화다. 비슷한 부류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모자라는 부분도 없진 않다. 같은 감독이 14년전 만들었던 '글레디에이터'의 지극히 대중적이고 매력적인 영웅 서사에 비교하자니, 모세의 고단하기만 한 여정은 재미도 감동도 다소 떨어진다. 올해 초 개봉했던 '노아'와 비교하자니, 인물의 심리를 진절머리 나도록 매섭게 파고드는 집요함과 힘이 부족한 듯 느껴져 허전하다. 60여년 전 동일한 스토리를 그렸던 찰턴 헤스턴.율 브린너 주연의 '십계'처럼 성경에 충실해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과정을 친절하게 펼쳐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을 보며 입이 떡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장대한 비주얼 때문이다. 시작부터 기세가 대단하다. 모세가 이집트 장군으로 활약하던 무렵 람세스와 함께 전쟁에 나가기 위해 출정식을 벌이는 장면이 펼쳐지면서부터 영화는 노선을 확실히 한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궁과 우뚝 솟은 조각상들의 위용은 보는 이의 눈을 빠르게 사로잡는다. 곧장 이어지는 전투 장면은 한발 더 나아간다. 전차와 말을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이집트 군의 움직임을 높은 곳에서 화면 가득 담아낸 장면은 규모의 승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야기가 차츰 진행되며 공간적 배경과 벌어지는 상황은 계속 바뀌어 나가지만, 영화가 추구하는 스펙터클의 미학은 멈춤 없이 계속된다. 람세스 대신 정찰을 나간 모세가 마주하게 되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참혹한 실상,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이집트로부터 쫓겨나 끝없이 사막을 헤매는 과정 등을 그릴 때도 한숨 돌리는 법이 없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를 오가며 만들어 낸 영화의 비주얼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집트에 본격적인 재앙이 시작되는 부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리들리 스캇 감독은 재앙 하나 하나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대신 열가지 재앙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방식을 택했다. 악어떼가 출몰해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는 첫번째 재앙에서 시작해 개구리, 메뚜기, 모기, 어둠, 우박, 종기 등의 재앙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과정은 그 빼어난 기술력과 거대한 스케일이 결합돼 극도의 긴박감과 압도감을 전한다.
가까스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은 영화의 예정된 하일라이트다. 흔히들 상상하는 것처럼 바다가 양쪽으로 쩍 갈라지며 마른 땅을 건너는 그림 대신 빠르게 말라가는 바다 사이를 힘들게 헤치며 건너는 모세와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의 사투를 담아내는 방식을 택해 도전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들을 치기 위해 전속력으로 뒤를 쫓던 이집트 군대가 위태위태하게 낭떠러지길을 달리다 산 밑으로 무너져내리는 장면의 위력 역시 놀랍다. 말랐던 홍해가 다시 땅을 덮치며 이집트 군대를 집어 삼키는 장면이 부감을 통해 한 눈에 들어올 때는 가슴 서늘한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혹시라도, 종교적 감동을 기대한다면 일찌감치 마음을 접는 편이 좋다.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느끼기에야 부족함이 없지만 그 이상은 없다. 계시 앞에서 번뇌하는 모세에게는 종종 정신적 쇄약함이나 불안정함이 느껴져 불편한 반면, 인간적 유악함을 드러내는 람세스에게는 오히려 동정이나 연민이 가는 부분도 많다. 영화적으로야 캐릭터의 다층성과 역동성이 더해진 플러스 요인이지만, 신앙적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들에겐 마이너스일수도 있는 요소다. 모세에게 전해지는 신의 계시는 한 소년의 형상과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데, 그 모습이 다소 오싹하고 섬뜩하게 그려졌다. 이 또한 '성경 영화'를 기대하는 많은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엑소더스'의 영상 혁명 '이렇게 만들었다'
로케이션과 세트
'엑소더스'의 주요 공간은 크게 세 곳이다. 극 중에서 람세스가 사는 수도 멤피스, 히브리인 노예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지역인 비돔,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에서 쫓겨나 떠도는 광활한 사막이다. 특히 각 공간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도록 공중에서 찍은 화면은 웅장한 스케일을 단박에 드러낸다. 이를 위한 주요 로케이션 촬영은 스페인 남부의 알메리아 지역에서 진행됐다. 제작진은 이곳에 대규모 세트를 지어 멤피스와 비돔을 구현했다. 길이 1㎞, 너비 1.5㎞에 달하는 거대한 세트다. 이 안에 30여 채의 건물을 지어 시장, 주택가, 상점 등을 꾸몄다. 이집트의 역대 파라오를 기리는 석상, 왕의 무덤을 상징하는 스핑크스도 직접 만들었다. 석상 중에 가장 큰 것은 높이가 15m나 된다. 드디어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벗어나 홍해에 이르는 길도 모두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카나리아 제도의 푸에르테벤투라 섬 안쪽에서 해변으로 가는 길은 바위투성이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모세의 여정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의상과 소품
세트는 규모에만 힘을 쏟는 게 아니다. 소품 하나 하나 꼼꼼한 고증을 거쳐 디테일을 살렸다. 람세스의 궁전에서 사용되는 고풍스럽고 화려한 탁자나 침대 같은 생활 소품이 이런 경우다. 극 중 중요한 물건으로 등장하는 모세의 칼 역시 이집트를 상징하는 문양을 정교하게 세공했다.
카이로 박물관, 페트리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같은 연구기관과 영국 스완지대학교 앨런 로이드 교수 같은 이집트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고증을 거친 결과다.
엄청난 물량의 의상도 투입됐다. 이집트 왕가의 화려한 의상, 히브리인 노예들의 누더기, 이집트 병사의 군복 등등 모두 5000여 벌의 옷과 3000켤레의 신발을 제작했다. 실크, 린넨, 가죽 등 계층마다 다른 원단을 사용해 의상을 제작했다.
실사와 특수효과
'엑소더스'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건 기적이 벌어지는 장면, 그야말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광경이다. 바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이 들이닥치는 대목과 모세 앞에서 홍해가 쫙 갈라지는 대목이다. 이런 장면을 위해 1300개의 컴퓨터 그래픽(CG) 숏이 포함됐다. 하지만 "CG영화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말이다. 나일강에 악어가 떼로 떠오르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개구리.파리.메뚜기 떼가 이집트 전역을 뒤덮는 장면 등은 CG와 실제 촬영 분량을 적절히 섞어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트에 개구리 300마리를 풀어놓고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CG 작업을 거쳐 개구리 떼가 도시 전체를 뒤덮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반면 관객이 가장 기대할 홍해 장면은 대부분 CG로 만들어졌다.
바다의 물길이 만화처럼 양편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자연 법칙에 따른 물리적 현상을 토대로 그렸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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