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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해롤드...]동양배우가 저지른 '영화적 사건'

Los Angeles

2004.07.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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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Harold & Kumar Go To White Castle)는 아시안에게는 일대 영화적 사건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잔 조)을 맡았다는 면에서 한인에게도 일대 영화적 사건이다. 잔 조와 칼 펜은 아시안 배우도 주연을 맡아 흥행영화를 끌고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은행 직원인 한인 해롤드 리(잔 조)와 대마초에 찌든 인도계 쿠마(칼 펜) 두 친구가 어느 배고픈 금요일 저녁 TV선전에 나오는 체인점 화이트 캐슬에 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벌이는 눈물 겨운 투쟁에는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가 허용하지 않았던 아시안의 모습이 있다.

아시아 영화가 아무리 세계의 주목을 받아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안은 주변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똑똑한 모범생이거나 무술의 고수, 이상한 영어를 구사하는 별종 같은 이미지가 고작이어서 인간적 매력은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저우룬파나 재키 챈 처럼 아시아에서의 스타 지위와 이미지를 갖고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들은 처음부터 아시안과는 상관이 없었다.

아시아 사람들과는 애초에 다른,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면서도 영어를 잘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처음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 아시안은 실질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존재하지 않았다.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전후 문맥과 별 상관없이 등장해 갑자기 칼을 던져대는 한인 소년 같은 존재가 아시안이었다. 아주 잠깐 불쑥 나타났다 휙 사라지는 방식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무서운 것은 언제나 그 엄청난 대중성이다. 아시안들이 몇 몇 인디영화로 무관심과 고정관념에 저항해도 역부족이었다.

아시안이 그렇게 외치고 싶어했던 ‘우린 이질감이 느껴지는 별종이 아니라 당신들과 똑같은 미국인’이라는 말을 할리우드가 했다는 면에서 ‘해롤드…’는 영화적 사건이 된다.

그것도 아시안이 아니라 유대계인 존 허위츠와 헤이든 슐로스버그가 스크립을 쓰고 ‘내 차 봤냐 ’(Dude, Where’s My Car )의 대니 라이너가 감독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아시안들이 만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류의 영화가 아니다.

허위츠와 슐로스버그가 스크립을 쓴 동기는 간단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한인과 인도계 친구들이 많았는데(영화속 인물 해롤드 리는 실제로 두 사람의 한인 친구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아시안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아시안들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시안의 문화적, 인종적 개성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처럼 욕망과 고민과 인간적 매력과 단점을 가진 보통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다.

‘해롤드…’의 강점은 이것을 할리우드 방식으로 이야기함으로써 대중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독립영화가 됐을 것이고 2000개 스크린 개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인 동료가 해롤드 리에게 자신들의 업무를 떠넘기고 금요일 데이트를 즐기러 가거나 백인 청년들이 인도계의 리커 스토어에서 낄낄대며 행패를 부리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적으로 범인이 되는 장면들은 주류 관객에게 무거울 수 있다.

하지만 허위츠와 슐로스버그는 영리하게 이런 메시지를 로드 무비와 엽기 코미디, 버디 영화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장르에 기대 풀어나간다.

해롤드와 쿠마가 대학 기숙사와 한적한 숲 속, 경찰서 등을 헤매면서 정체성을 찾아 헤맨 한밤의 코믹 오디세이는 햄버거 체인점 화이트 캐슬에서 막을 내린다. 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그 기구하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을까 하지만 여기서 햄버거는 그냥 햄버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은 양과 맛을 약속한다고 믿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두 사람은 진정한 미국인이 된다. 이제 쿠마는 고정관념이 아닌 자유 의지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해롤드는 당당히 동료들에게 항의하며 짝사랑하던 마리아에 사랑을 고백하고 키스를 나눈다.

30일 개봉. 등급 R. 와이드 상영.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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