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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브라질의 행정수도 이전

New York

2004.07.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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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원

변호사







요사이 한국 정부는 서울을 옮기는 문제로 조야가 시끄럽다. 여기에 시민단체, 언론, 학계까지 가세해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아전인수’격으로 서로 자기주장을 정당화 하려다보니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다.

그중의 하나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브라질이다. 21세기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브릭스(BRICS)’ 4개국 중 하나인 브라질은 수도를 잘 옮겨서 발전한다는 이야기다. 브릭스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신흥세력으로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가리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브라질은 알려진 사실과 너무 다르다. 나는 브라질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도 이전으로 브라질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국가 발전이 얼마나 후퇴하는가를 똑똑히 목격했다.

세계 삼대 미항은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이탈리아의 나폴리 이다. 나는 이 세 곳을 여러번 가봤지만, 시드니, 나폴리를 다 합쳐도 리오데 자네이로 하나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만큼 리오데 자네이로는 천연의 아름다운 곳에 인공미를 가미한 ‘천연 인공도시’인 셈이다.

앞에는 아름다운 남대서양 바다와 뒤에는 열대림으로 우거진 높은 산이 있고, 굽이굽이 돌아간 만(灣)을 끼고 있는 백사장에는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밭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온갖 건축미를 뽐내듯 솟아있는 빌딩은 선경(仙境)으로 들어온 착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브라질은 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왕조’가 있던 나라다. 리오데 자네이로는 19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엽까지 한 세기 반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를 가진 나라였다. 포르투갈 제국이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서 왕정을 브라질로 이주한 1807년부터 리오데 자네이로는 세계 각국에 있던 포르투갈 식민지 선박이 드나들면서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부터 수도권이 과밀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밀화의 해결책으로 브라질과 같은 대국은 수도를 국토 중앙으로 옮겨야 국가가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돌출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만원’이라는 탄식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전에 브라질에서 먼저 생긴 말이다. 수도권 과밀로 인한 교통체증과 물류비용, 환경오염은 극에 달했다. 따라서 일부 학자와 정치가들은 새 수도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거 브라질 독재 정권하에서 불균형적으로 발전한 수도를 제자리에 올려놓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새수도 건설’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브라질은 당시 수도이전 찬반 논의가 온 나라를 들끓고 있을 때 국회를 통과시키고, 새수도 이름을 ‘브라질리아’로 한다고 헌법에 명시했다.

과거 브라질의 이같은 과정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면이 많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수도이전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지 지켜봐야 하지만 브라질처럼 속전속결로 치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시 브라질은 수도이전 반대파를 달래기 위해 각종 혜택을 보장해줬다고 한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과 그 가족에게 매주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고, 주택을 절반가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돕고, 그 혜택은 각종 고급 공무원들까지도 돌아갔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어렵게 진행된 브라질리아는 브라질이 낳은 천재적인 건축가 ‘느에마이어’가 설계한 비행기 모양을 한 ‘21세기 수도’로 신호등이 없는 입체적인 도시로 건설, 세계 각국의 건축가와 도시 행정가들이 필수로 견학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리아는 20년도 안돼 각종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인구 30만으로 건설된 행정 수도는 100만이 넘는 ‘공룡(恐龍)’이 되면서 300년은 넉넉할 것으로 예상했던 호수의 물은 수질오염으로 골칫거리로 전락했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긴 위성도시는 빈민굴화 됐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새 행정수도 건설로 발생한 초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다. 20세기 말 부터는 선진국이 될 것으로 믿었던 브라질은 물가가 한달에 80%를 오르내릴 정도로 악화되기도 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악화돼 돈 없는 서민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 아름답던 리오데 자네이로는 수도가 떠난 후 조직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새 행정수도는 제 구실을 못해 문제의 발생지가 됐다.

브라질이 수도를 옮기지만 않았으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를 가진 나라로 진작에 선진국으로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수도이전처럼 중요한 사항을 쉽게 결정해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은 지난친 ‘기우(杞憂)’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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