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정신건강에세이>‘도라’라는 환자

San Francisco

2004.08.03 16:1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정유석(정신과 전문의)
50대의 나이에 왕성한 정력으로 정신분석을 정립하던 프로이트는 1905년에서 1915년 사이에 그동안 다룬 환자들의 증례를 하나씩 발표했다.
‘도라’(1905)라는 히스테리 환자, ‘작은 한스’(1909)라는 공포증 환자, ‘슈레버 판사’(1910)라는 망상증 환자, ‘쥐인간’(1910)이라는 강박증 환자, 그리고 ‘늑대 인간’(1915)이란 유아기 노이로제 환자 등인데 정신분석학에서 이들 다섯명의 이름은 프로이트 자신의 명성 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
도라(Dora)는 프로이트가 1900년 10월에 치료했던 18세의 소녀였다. 그녀는 중류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지적이고 매력적인 용모를 지녔다. 그녀의 주 증상은 돌연 기침 발작이 심해지면서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목소리까지 낼 수 없는 실어증이었다.
또 우울증이 심해지고 부모, 특히 아버지를 미워해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싸여 있었다.
그래서 죄책감과 함께 딸의 안위를 걱정한 아버지가 도라를 치료해 달라고 프로이트에 데려온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소녀가 몇 겹으로 싸인 복잡한 성적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래 도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심리적으로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도라의 어머니는 사회적 교류라든가 취미는 전혀 없고 성적으로 억눌린 상태에서 모든 신경을 집 안을 치우고 물건을 정돈하는 데만 쏟으며 사는 ‘가정 집착 주부 병자’였다.
부인으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이웃 친구 K의 부인 K여사와 정분을 나누었다. 그런데 도라는 전부터 K부인과 가깝게 지내던 처지였다. 따라서 도라가 발견한 그들의 정사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K부인으로부터 이중으로 당한 배신이었으며 이 두사람에 대한 이중의 질투였던 셈이다.
그런데 K여사의 남편 K씨는 전부터 도라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얼마전 K는 도라를 자기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집 앞 호숫가에 앉아 도라에게 자기는 부인과 이혼할 생각이며 그러고 나면 도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키스하는 등 성적 접촉을 꾀했다. 도라가 K를 책망하자 이번에는 K가 오히려 도라가 상상해낸 일이라고 발뺌했다.
도라는 아버지에게 K의 ‘부적절한 행동’을 고발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도라가 철이 없어 생긴 일이라며 오히려 K를 감쌌다. 도라는 아버지가 K부인과의 정사를 지속하기 위해 자신을 K에게 희생물로 바쳤다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데 사실 도라는 K를 은연중 사모하고 있었으며 결혼까지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K가 근래에 자기 집 하녀와 정사를 가진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그것도 하녀에게 호숫가에서 자가에게 말한 것 처럼 똑같은 유혹을 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프로이트는 미궁 속과 같은 도라의 경우에 큰 흥미를 느끼고 그녀를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나 3개월만에 치료는 실패로 끝났다.
몇 년 후 도라의 케이스를 『히스테리 한 예 분석의 편린』이란 책으로 기술하면서 자신이 도라에게 사용했던 분석 방법과 약점들을 성찰했가. 그 결과 분석에서 발생하는 ‘전이(轉移, Transference)’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전이란 과거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 태도, 충동, 소망과 이에 따른 방어가 치료 과정에서 현재의 대상인 치료자에게 옮겨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이나 원인이 치료자에게 투사되기 때문에 경험 있는 치료자는 이점을 잘 파악하여 치료해야 한다.
사실 도라를 치료하는 중에 그녀는 아버지와 K에 대해 발생한 자신의 근친상간적 애정을 프로이트에게 전이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전이를 효과적인 치료 수단으로 적절히 사용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말년에 도라는 잠시 결혼도 했다고 하는데 불감증 상태에서 남자로부터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영위하다가 뉴욕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