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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손석희 앵커의 말·말·말

Los Angeles

2015.01.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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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소 현/JTBC LA특파원·차장
JTBC 메인 뉴스 '뉴스룸' 2부는 앵커 브리핑으로 시작된다. 손석희 앵커가 그날의 주요 사안을 한마디 단어나 문장으로 축약해서 풀어내는 순서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지난 9월 22일 시작된 후 앵커 브리핑에서는 지금까지 총 58개의 단어가 소개됐다. 9월 29일 오늘의 단어는 '하마'였다. 손 앵커는 총 22조 원이 쓰인 4대강 공사는 '돈 먹는 하마', '세금 먹는 하마'라고 지적했다. 11월 4일의 단어는 '꼴찌'. 1등만을 강요당하는 한국 학생들이 스스로 점수를 매긴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차이로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 말이다. 11월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수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날은 '기다리겠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 있는 소중한 생명들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됐다. 그리고 이날 앵커 브리핑의 끝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로 맺었다.

총 64만 명이 수능시험을 치른 11월 13일에는 '청춘'이, 정윤회 문건 유출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달 2일에는 일본어인 '찌라시'가 선정돼 청와대와 정치권까지 쥐락펴락 하는 '찌라시'의 위력(?)을 다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이 일어난 날의 단어는 '넛츠(Nuts)'.

손 앵커는 넛츠라는 말이 영어로 '말도 안 되는' '과도하게 흥분한' 등의 의미도 있다며 뉴욕공항에서 내려 몸과 마음이 외톨이가 됐을 사무장이 혼잣말로 "NUTS!(말도 안 돼!)"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며 어이없는 사태를 꼬집었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12월 31일, 2014년을 몇 시간 남겨 두고 주목한 단어 '얼굴'에선 코끝이 시큰해졌다. 온·오프라인에서 접한 시청자들은 각자 '얼굴'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는 학생, 함께 일한 동료의 얼굴을 떠올린 회사원, 새벽에 출근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척추와 같다고 한 시민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304명의 얼굴을 잊지 말자고 한 내용도 전해졌다. 또 내가 갑질을 하진 않았는지, 안전을 등한시하진 않았는지, 그리고 말을 사슴이라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한해를 돌아보자고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올해도 우리는 수많은 얼굴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얼굴이면 좋으련만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얼굴도 있을 테고 보기만 해도 화나는 얼굴도 있을 것이다.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얼굴 때문에 기쁠 수도 있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얼굴 때문에 슬플 수도 있다. 앵커 브리핑에서 소개된 많은 사람의 '얼굴'에 대한 생각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봤던 얼굴들을 기억하며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얼굴'이라는 단어로 2014년 마지막 날을 정리한 앵커 브리핑의 끝은 이렇다. "행복한 일, 불행한 일 모두 겪어내며 한 해를 무사히 버텨온, 여러분에게 멀리 아일랜드의 격언으로 새해 덕담을 대신합니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맞다. 햇살에 웃을 수 있는 얼굴이면 충분하다. '소원 성취', '대박 새해' 부담스러웠는데 등 뒤의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은 세상 그 어떤 덕담보다 포근해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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