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한국으로 역이민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비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갈수록 양극화로 치닫고,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해서는 흡수하거나 배척하려는 두 가지 마음만 팽배한 것 같습니다.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다양한 가치관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고,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야단치고 배척한다면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정치나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적 혹은 아군으로 딱 갈라집니다. 친구나 가족 간에도 이 문제로 의절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눈길을 주는 너그러운 분위기가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가 있더군요. 새해에는 '네 말 좀 들어주마'라는 말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남북관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남북 정상들이 신년 메시지를 통해 관계 개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신뢰와 화해는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잘 풀려나갈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퍼지고 증오의 감정이 사그라진다면 분단 때문에 생겨난 날선 감정들도 부드러워지겠지요.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두 단어를 붙잡고 한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성장'과 '보람'입니다. '성장'은 저 개인을 향한 것입니다. '보람'은 타자, 공동체를 향한 것입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 박사가 쓴 책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통나무 위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중 네마리가 뛰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남은 개구리는 몇 마리?" 아들이 "한 마리"하고 소리치자 아버지는 "아니지. 다섯 마리지. 마음 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라고 말합니다. 실천의 중요성입니다. 맥스웰 박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실천과 도전정신이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타성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꾸짖습니다.
'보람'의 중요성은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웁니다. "사람들의 행복론은 90%가 복을 받는, 즉 내가 받는 쪽에 치우쳐 있다. 그러면 더 잘살게 되어도 늘 걸신들린 듯 정신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주체적으로 베풀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이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행복은 잠시 기쁨을 줄 지는 모르지만 지속가능한 행복을 만들 수는 없다고 스님은 설파합니다.
새로운 한 해의 처음에 섰다는 것은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장 순결할 때도, 가장 견결할 때도 지금입니다. 그런 마음이 스러지지 않고 토실토실 과실이 영글면서 한해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성장'과 '보람'이 함께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려다 빈손 털지 말고 복을 많이 '만드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진맥 세상] 이원영 시사칼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