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젊은 시절 떠나보낸 첫사랑을 가슴에 안고 사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미칠듯이 사랑했던 첫사랑은 소설처럼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녀는 부모의 권유로 안정적인 한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전 남자를 사랑했고 이 남자와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현재의 남편에게는 별 애정이 없었다.
어느 날 남편과 돈 문제로 다투다가 남편이 홧김에 던진 지폐들을 엎드려 줍게 되었다. 그녀는 문득 “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이런 모습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꿈꾸었던 그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온통 무지개 빛이었다. 그곳에는 부부싸움이나 갈등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첫사랑과 결혼하지 못한 게 차라리 잘된 일이다. 감정이 무덤덤한 현재의 남편과는 ‘그러려니’하고 지금껏 무난하게 살았지만 그 첫사랑과 결혼했더라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함께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돈 때문에 싸우기도 하는 일상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혹 결혼이란 미칠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단정짓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미칠듯이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상대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연애중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면 어느 정도는 상대에 집착하게 되고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 중독상태가 되면 자기만의 감정에 사로잡혀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영화와 관련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는 최면이라도 걸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었다. 어떻게든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맺은 사랑이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사랑 따로, 결혼 따로’와 같은 진실되지 못한 연애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상대의 체취에 젖어 이성을 잃기보다는 마주 앉아 상대가 나의 어떤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무엇에 눈길이 머무는지 확인해보라. 상대의 외모를 보기 위해 그 앞에 서있기보다는 그 마음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라.
결혼생활의 행복과 불행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얼마만큼 상대를 이해하는지에 달려있다. 사랑할수록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도 더 크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서 좀 떨어져 차분하게 생각해야 한다. 두 사람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치열하고 미칠 듯이 사랑하는 연인보다는 친구같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엮어가는 연인들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미국 작가 아머 카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침대로 가지만 좋은 친구와는 결혼한다.” 당신의 사랑은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사랑과 함께 우정도 쌓아간다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