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끝자락이었던 1999년 영화 '매트릭스'를 보며 충격과 전율을 경험했던 관객들에게, 2012년 워쇼스키 남매가 내놓았던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여섯 개의 이야기가 촘촘히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즐처럼 맞아 들어갔던 데이비드 미첼의 소설을 야심 차게 스크린으로 옮겼지만, 영화는 정신없이 얽히고 설켜 혼란스럽기만 할 뿐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의 신작 '주피터 어센딩(Jupiter Ascending)'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도 그 때문이다.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적 감각과 연출력에 대해 회의를 품은 사람들도 늘어났고, 지난해로 예정돼 있던 개봉이 한 차례 연기되면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좋지 않은 루머도 파다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주피터 어센딩'은 세간의 이 같은 걱정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매트릭스' 만큼의 깊이나 파격까진 아니지만, 나름 워쇼스키 남매 특유의 세계관에 할리우드식 흥행 공식을 적절히 결합시킨 흥미로운 액션 오락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만화를 원작으로 했거나, 과거 히트했던 작품의 리메이크인 할리우드의 현 상황에 비추어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독창적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스토리와 콘셉트라는 점도 높이 사줄 만 하다.
영화는 "나는 에일리언"이라는 주인공 주피터(밀라 쿠니스)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에서 건너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민자 신세라는 뜻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외계인이라는 또 다른 단어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부잣집 화장실 청소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주피터는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으로 난자를 팔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그때 케인(채닝 테이텀)이란 이름의 또 다른 존재가 바람같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 준다. 쏜살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신발을 신고 공중을 누비는가 하면, 비행선을 타고 곡예를 펼치며 흉측한 외계인들을 거침없이 쳐부수는 영웅 같은 존재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주피터에게 케인은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전한다. 사실 주피터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지구의 주인인 고귀한 존재이며, 우주의 왕족 아브라삭스 가문을 비롯한 외계 행성의 주인들이 그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케인은 그녀를 안전히 우주로 데려가 태생에 걸맞은 지위와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전사인 셈이다.
'주피터 어센딩'은 주피터와 케인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겪게 되는 다양한 모험을 스케일 큰 액션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독특한 디자인의 무기나 우주선을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 내 시원시원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구현해 낸 솜씨는 특히 놀랍다. 타이터스의 꼬임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 주피터를 구하기 위해 케인이 돌진해 가는 장면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싸우는 영화 후반 주피터의 폭주는 그 중에서도 빛난다.
주피터와 케인의 진부한 러브 라인이나 끝이 뻔히 보이는 해피엔딩, '스타트렉'이나 '헝거게임'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분장과 의상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주피터 어센딩'을 수작이라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중간 중간 살아있는 워쇼스키 남매의 유머 감각은 반갑다. 지구에서도 이민자 신분이었던 주피터가 우주로 가서도 정식 신분증을 얻기까지 공기관 이곳저곳을 누비며 고생을 한다는 설정은 적당히 현실 풍자적이면서도 유쾌한 아이디어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통해 워쇼스키 남매의 아시안 페르소나로 등극한 한국 여배우 배두나는 '주피터 어센딩'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주피터를 잡으려는 현상금 사냥꾼 역이다. 기대만큼 분량이 많진 않지만 극 초반 등장해 특유의 시크한 매력으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