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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타작도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ㆍ1745~?)가 그린 풍속화로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보물 제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수록돼 있는 25장의 그림 중 하나가 <타작도(打作圖)> 다.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농부들이 웃옷을 벗어 젖히고 벼를 타작하고 있다.
베어낸 벼를 지게에 지고 나르는 사람과 통나무에 내리쳐 알곡을 털어내는 사람, 털어낸 알곡을 쓸어모으는 사람 등 모두가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가장 힘이 드는 털어내는 일은 젊은 사람이 하고, 좀 힘이 덜 드는 쓸어내거나 나르는 일은 노인의 몫이다.
일하는 농부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얼굴 표정에서 고된 노동의 피로감보다는 함께 노동요를 부르며 일하는 신명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갓을 비껴 쓰고 담뱃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마름의 모습도 보인다.
마름은 지주의 토지가 있는 곳에 상주하면서 추수기의 작황을 조사하고 직접 소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징수해 지주에게 상납하는 것을 주된 직무로 하고 있다.
자연히 마름은 지주의 입장에 서서 소작인들을 독려하기 마련이고, 소작인들은 싫든 좋든 간에 그의 요구와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따라서 마름과 소작인의 관계는 자칫 갈등이 있을 소지가 많다.
<타작도> 는 이처럼 신분적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한 장면에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현실 부정의 미나 격렬한 대립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그림에서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동그란 눈매를 지닌 농부들의 얼굴이 밝고 소탈하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마름의 표정 또한 덤덤하고 유연하다.
이것은 김홍도가 소작인들이나 마름의 어느 한 편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런 현실적 갈등의 관계를 초월하는 해학과 중용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볏단을 내리치는 농부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 연출해 내는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신분간의 갈등이나 대립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은 인물의 배치에서 김홍도 특유의 X자형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간략한 필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인들의 심성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해학과 중용의 정신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 <타작도> 다.
투쟁보다는 중용, 갈등보다는 조화를 신봉하는 마음이 해학정신이다.
해학 정신은 또한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함을 추구하는 마음, 즉 미래지향적인 생명력이다.

  <타작도> 를 지배하고 있는 활달하고 건강한 분위기는 중용과 조화를 신봉하는 해학정신과, 사실보다 절대적 진실을 추구하는 관조의 태도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타작도> 의 바탕에 깔려 있는 중용과 해학의 정신은 김홍도 스스로가 깊은 사색을 통해 터득한 것이라기보다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온 한국인들이 선천적으로 터득하고 공유했던 생활철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김영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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