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는 있는데 강의실은 없는 대학교" "모든 수강생이 전원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대학교" "근래 100년 동안 처음 설립된 최고 대학교"
풋볼이나 아이비로 뒤덮인 건물 등 전통적인 대학의 모습에 불필요한 건 없애고 근본인 교육 현장만 남겨놓은 새로운 형태의 대학 '미네르바 대학'을 가리키는 설명이다. 작년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발을 내디딘 이 대학은 비영리로 운영되는 전통적인 대학교들과 달리 영리 교육기관이다.
투자로 시작된 신개념 대학
미네르바는 2012년 투자그룹 벤치마크 캐피털로부터 2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시작됐다. 2013년 3월 하버드대 사회과학대 학장과 스탠퍼드대 행동과학고등연구센터 소장이던 스티븐 코슬린이 초대 총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세계적 석학들을 여러 학과의 책임자로 채용했으며 학교 학사과정을 만들었다.
유펜 와튼스쿨 졸업생 벤 넬슨은 미네르바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벤처기업인 온라인 사진 인쇄업체 스냅피쉬를 10여 년 동안 경영하다 휴렛팩커드에 3억 달러에 매각하고 그 기금을 토대로 미네르바를 탄생시켰다.
사업적 측면에서 간단하게 말한다면 온라인 강의를 바탕으로 하되, 교육과 무관한 요소들을 제거해서 아이비대학의 절반 수준인 학비를 받고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하버드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물 이용에 있어 어느 정도 뉴욕대(NYU)를 모델로 삼은 이 학교는 캠퍼스는 물론, 소유 건물이나 스포츠팀, 도서관,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이 없다. 단지 임대해서 사용하는 기숙사가 있다.
첨단기술 도입한 글로벌 수업
기존의 온라인 강의와 달리 교수는 실제 리버럴아츠 대학의 수업처럼 토론 중심의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도 퀴즈, 토론, 소규모 그룹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교수는 수업에 참여중인 모든 학생의 얼굴을 보면서 수업을 한다. 교수는 학생들의 점수를 실시간으로 보고 누가 숙제를 안 했는지, 누가 과제를 이해 못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각자 발언한 횟수도 자동으로 확인된다. 수업도중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를 푸는 학생에게도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교수는 수업이 끝나면 각 학생에게 수업평가를 즉시 보내준다. 이는 기존의 아이비나 리버럴아츠 대학에도 없는 수업 방식이다.
학생은 세계 여러 곳에서 수업을 받는다. 1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지만 그 다음 해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베를린에서, 그 다음은 홍콩과 뭄바이, 4년째는 런던과 뉴욕에서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효율적 소통,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십을 가르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학생이 구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학교는 크게 두 단과대학으로 나뉜다. 문리대(사회학·자연과학·수리과학·인문과 미술)와 경영대가 그것이다. 학교는 인가를 받기 위해 클레이몬트 케크대학원(KGI)을 파트너로 삼았다. KGI는 1997년에 설립됐고, LA 인근 대학 연합체인 클레어몬트 컨소시엄의 일원이다. 비즈니스대학은 인가절차를 진행중이다.
미네르바대학은 입학 정원이 없다. 재능있는 모든 학생을 입학시킨다는 것인데 지적능력과 지도력뿐 아니라 분석능력, 창의성, 투지와 끈기까지 고려한다. SAT 시험점수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부자학생들이 SAT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지원자들은 IQ 시험과 흡사한 공간 추리 시험을 온라인으로 봐야한다. 여기를 통과한 학생들은 역시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치르는데 인터뷰 도중에 에세이를 써야한다. 이 역시 돈을 주고 에세이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올해 2464명이 지원해 69명이 합격됐다. 또 14개국에서 28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첫해 입학생의 20%가 미국 학생인데 학교는 점차 이 비율을 10% 정도로 낮출 계획이다.
첫 입학생의 학비는 전액 면제였지만 올해부터 예상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해 2만7950달러다.
◆넘어야 할 제약도 많아
캠퍼스가 없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신생 대학에 우수한 학생이 얼마나 지원할까? 아이비리그 학비가 연간 5만 달러 이상이 드는 데 비해 미네르바대는 절반 정도면 될 것이라고 넬슨은 말하지만, 그런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연간 2만 달러 넘게 지출할 학생은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미네르바대 학생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의 혜택을 볼 수 없다. 이에 넬슨은 “미국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전세계 중산층 학생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학생이 입학하도록 하려면 출중한 교수진을 갖춰야 한다. 넬슨은 이 부분에 대해 "박사학위를 받고 아직 자리잡지 못했거나 은퇴했지만 이전처럼 가르칠 수 있는 교수들을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신생 대학으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넬슨은 미네르바상을 제정했다. 매년 특별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교수 1명을 선정해 50만 달러의 상금을 준다. 그 첫번째 수상자로 하버드대 에릭 마주르 박사가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