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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호는 VA 노폭서 출항

Washington DC

2015.02.1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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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피란민 1만4000여명 구한 ‘기적의 배’
‘가장 많은 사람 구출한 배’…1993년 고철로 중국에 팔려
한국전쟁 당시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흥남철수작전. 그 중심엔 민간 상선으로 참전해 수 많은 생명을 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이하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가 있었다. 빅토리호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짐과 장비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 건조된 화물선이었다. ‘메러디스’는 노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대학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그 뒤 ‘빅토리’는 당시 전쟁에 동원된 모든 화물선들에 통일적으로 붙여졌다. 영문명 ‘메러디스’ 앞 ‘SS’는 스팀쉽(Steam Ship)의 약자로, 빅토리호가 증기선이었음을 뜻한다.

빅토리호는 워싱턴 일원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흥남부두에서 역사의 한장을 쓰기 전 정박해 있던 곳이 버지니아주 노폭의 해군기지였다. 빅토리호는 1950년 7월28일 탄약등 군수물자를 싣고 노폭항구를 출항, 파나마운하를 통해 태평양을 가로지른 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빅토리호는 12월 20일 흥남항에 도착, 군수물자를 싣고 철수할 예정이었다.

당시 미군과 한국군 10만여 명과 피란민 약 9만명으로 아비규환이던 흥남부두에 군함 및 상선 193척이 도착했다. 10만 5000여명의 지상군과 1만 대가 넘는 차량, 군수물자가 미 해군 군함과 상선에 실렸다. 현봉학 민사고문은 미 육군 10군단장인 아몬드 장군에게 피란민을 태워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결국 아몬드 장군은 피란민 승선을 허용하는 인도주의적 명령을 내렸다.

빅토리호의 레너드 P. 라루 선장은 아몬드 장군의 명령과는 별도로 피란민 승선을 결정했다. 12월 22일 오후 9시부터 시작된 피란민 승선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이어졌다. 빅토리호는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을 구출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빅토리호는 1박 2일의 항해 끝에 부산 지역에 도착한다. 물, 음식, 보온 시설 등 모든 게 열악했지만 목숨을 건 탈출 내내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5명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났을 뿐이다. 빅토리호는 성탄절이던 25일 피란민들을 거제도 장승포항에 수송했다.

빅토리호는 이후 베트남전에 투입됐다가 1971년 퇴역했다. 한국인 1만여 명의 생명을 실어나른 이 선박은 1993년 중국에 팔려 고철로 분해됐다. 빅토리호는 해상 재난 현장에서 인명 구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배에게 수여되는 갤런트 상(Gallant Award)을 수상했으며, 미 교통부로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을 한 기적의 배’로 선포되기도 했다.

한편 리걸페어팩스타운센터극장은 국제시장의 상영을 오는 19일(목)까지 연장했으며 객석점유율을 보고 추가 상영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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