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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미안하다는 말은?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의 차이점이나 '미안합니다'와 '죄송합니다'의 차이점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한자어인지 아닌지가 설명의 초점이 된다. '감사하다'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좀 더 공식적인 느낌이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런데 '미안(未安)하다'와 '죄송(罪悚)하다'의 경우에는 둘 다 순우리말이 아니어서 이런 설명이 불가능하다. '미안하다'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는 것이다. 두 단어의 차이점으로 '미안하다'는 '미안해'와 같이 반말이 가능한데 '죄송하다'는 반말이 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을 할 수는 있다. 이것은 '고맙습니다'가 '고마워'가 되는 반면 '감사합니다'가 '감사해'가 안 되는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안하다'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을 찾아보면 아주 없지는 않다. 우리는 '미안하다'나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잘못했다'는 말을 하거나 '마음이 안 좋다'는 표현을 쓴다. '미안하다'는 말은 의미상으로 보면 '마음이 안 좋다'는 표현과 가까워 보인다. '미안(未安)'의 원 의미가 '편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죄송하다'는 말은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의미와 더 가까워 보인다. '죄송(罪悚)'의 의미가 자신의 허물을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송하다'가 '미안하다'보다는 훨씬 잘못한 상황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죄(罪)'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강렬함이 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우리말에서는 미안하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아예 '할 말이 없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한다. 말을 하지 않는 게 훨씬 진심에 가깝다는 우리의 인식도 담겨 있다. 실제로 미안할 때 아무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외국 사람들 중에는 한국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아서 불쾌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인의 의사소통 문화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다.

영어의 'sorry'의 의미를 '미안하다'고 번역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운명 소식을 들었을 때 "I am sorry to hear that"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 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유감이다'라고 번역을 하기도 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물론 '유감이다' 대신에 '미안하다'라고 번역해도 매우 어색하다. 그런데 '미안하다'의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영어에서 왜 그런 장면에 '미안하다'는 말을 쓰는지 알 수 있었다. 'sorry'는 마음이 불편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런 말을 들어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안 좋고 아파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이나 'sorry'라는 말이나 모두 감정의 상태는 비슷하다. 사실 '유감'이라는 말도 그런 감정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금은 무척 건조한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해 놓고 '미안!'하고 말을 던진다. 정말 얄미운 '미안함'이다. 미안하다고 할 때는 우리의 마음이 불편해야 한다. 그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다. 많은 사람의 사과가 그저 형식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 언짢을 때가 있다. 형식적인 미안함보다 더 나쁜 의사소통이다.

거짓으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해서는 안 된다. 미안함은 다른 사람에게 행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마음이 불편하고 아픈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미안한 일 자체를 하지 말라던 어린 시절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사실 한국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즐겨 쓰는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해 버린 이 상황에 그저 마음이 무척 불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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