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월 15일)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사망 150주년이다. 그는 암살범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날의 슬픔은 아직도 계속된다. 링컨은 150년전인 1895년 4월 15일 포드 극장에서 배우 존 윌크스 부스의 총에 죽었다.
미국 역사상 링컨의 장례처럼 온 국민이 슬픔속에 잠긴 적이 없었다. 링컨의 장례열차는 수도 워싱턴DC를 출발해 그의 고향 일리노이 스프링필드까지 도착했는데, 유리관 속에 잠든 링컨을 한번만이라도 보려는 수백만명의 인파가 장사진을 이뤘다. 진정한 자유를 선물로 남기고 떠난 링컨의 마지막을 보기위해 백인, 흑인, 군인, 외국인,어린이들까지 기차가 지나는 길목마다 눈물바다를 이뤘다.
링컨은 떠났지만 ‘새로운 법과 새 언약’을 이땅에 유언으로 남겼다. 그가 남긴 노예 해방, 인간의 참된 자유 선언은 남북 전쟁의 노예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다가올 미래의 인류를 향한 참된 자유함, 인류를 향한 비젼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참된 자유가 없이는 우리사회에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링컨은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참된 자유함이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직도 이땅에는 남과 북, 흑과 백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몇개월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등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총격으로 사망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인종간의 증오와 갈등은 이땅에 아직 사라지지 않고있다.
우리가 사는 애틀랜타는 남북전쟁의 아픔을 겪은 곳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고향, 타라의 땅이다. 흑인노예들의 눈물로 젖은 남북전쟁의 격전지가 바로 애틀랜타였다. 남북전쟁 직후 애틀란타는 거의 모든 산업과 가옥이 파괴되었고, 흑인노예들로 운영되던 목화 농장도 황폐화됐다. 남북전쟁의 역사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스톤마운틴에 거대한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들은 바로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장군,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 대통령, 스톤웰 잭슨 장군이다. 스톤마운틴내 메모리얼홀에는 남북전쟁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의 사망자는 62만명에 이른다. 이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전사자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이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링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에는 한번도 가본 적도 없이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직한 사람, 위대한 해방자, 통나무집 대통령, 검둥이 애호가등 다채로운 별명을 지녔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변호사로, 작가로, 철인으로서 ‘새로운 법과 새 언약’과 ‘인류평등을 위한 자유선언’을 남겼다. 그가 남긴 노예해방은 온 인류 가슴에 살아있지만, 링컨은 그 이유로 사살되었다.
왜 미국인들은 150년이 지난 오늘도 링컨의 죽음을 그토록 애도하는가? 링컨은 ‘성 금요일의 부활’같은 존재다. 지금도 미국인들은 “링컨은 새로운 삶을 바라보는 소망이요, 영혼을 다시 살리는 살아있는 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 땅에는 150년 전 ‘링컨의 혼’인 인간의 참된 자유, 생명의 숭고함이 살아있는지 의문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갈등, 흑백간의 무차별 총격 등을 보면 미국의 남북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북전쟁의 아픈 역사로 얼룩진 애틀란타에 사는 우리 이민자들도 150년전 링컨이 남긴 ‘인류를 위한 자유함’을 다시 한번 새겨볼 때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 별, 이 땅엔 주인이 없다. 로마 카톨릭, 유태인 랍비, 불교 스님, 흑인이나 백인이나, 아시안이나, 아프리칸이나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이 주인이요, 평등하다. 그날 죽어간 링컨이 눈물로 쓰고간 산 역사의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보자.